바다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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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오세영 시인의 ‘바닷가에서’라는 시다. 시인은 바닷가에 가면 스스로를 낮춰 평안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의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계절을 막론하고 바닷가를 찾는 것일까.

▲사실 바다는 모든 살아 있는 것의 자궁이다. 과학적으로 모든 생물의 조상은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설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바다에서 태어났다. 사람과 같은 척추동물의 진화는 어류로부터 양서류를 거쳐, 파충류나 포유류성 파충류, 조류, 포유류 순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의 DNA에는 물에 대한 친근함이 배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닷가를 찾는 것은 고향을 찾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바다에서 헤엄을 치거나 낚시를 하거나 서핑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해 고향을 즐기는 것이다.

▲문제는 바다는 언제나 위험하다는 점이다. 바다는 생명을 탄생시킨 조물주이면서도 생명을 앗아가는 저승사자인 셈이다.

산에 놀러갔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질 경우 골절 부상을 입어도 살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물에 빠지면 곧 죽음의 세계다. 호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다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한 고래도 물속에서만 살 수는 없다.

일정한 시차를 두고 물 밖에서 호흡을 해야 한다.

▲올해부터 법 개정으로 사시사철 해수욕장 입수가 가능해졌다.

시민들의 편의 때문인 모양이다.

그러나 해수욕장 개장 시기 외에는 안전요원이 없는 만큼 사고 우려가 커졌다. 실제 지난 7일 오후 중문색달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던 A씨(33·서울)가 8일 오전에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기온이 높은 초가을이나 늦봄에도 사람들은 해수욕을 즐기기 일쑤다.

그러나 사계절 내내 해수욕장에 안전요원을 두면서 세금을 낭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들이 사계절 내내 바다를 즐기고 안전도 확보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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