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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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BHA 국제학교 이사, 시인/수필가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교정을 떠난 지 벌써 30년이 흘렀네요. 저희들도 이제 50줄에 들어서려니 선생님들과 함께 늙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 말에 새삼 세월의 무게를 느끼며 주변을 돌아본다. 큰 호텔의 컨벤션 홀을 제자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30년 전 앳되고 초롱초롱한 모습들이 많이도 변했다.

오늘은 고등학교 졸업 30주년을 맞이한 제자들이 기념식과 사은회를 함께 하는 자리다. 이제는 사회의 중견이자 중심에 선 제자들이 여러 가지 공헌과 봉사와 지원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20명의 후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학교 동문회 건립 기금도 기탁한다.

내게는 가장 애착이 서린 제자들이다. 젊은 시절 1학년 때 부터 3년간 가르쳐 보낸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1학년 때는 제주시에서 중문까지, 2학년 때는 표선까지 도보 행군하던 때가 기억에 새롭다. 그들도 힘들었지만 우리 선생님들도 함께 걸어가려니 부르튼 발바닥의 폭우 속 행군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졸업반 시절을 잠시 회상해 본다. 학교 분위기가 1, 2학년 때는 편히 지내며 쉬엄쉬엄 공부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3학년이 되면 학부모, 선생님, 학생들이 똘똘 뭉쳐 저돌적으로 맹렬히 입시에 몰입하는 학교였다.

당시에는 매달 중앙 모의고사를 봤는데, 3, 4월에는 제주시내에서 거의 최하위 성적이었다. 그러나 서너 달 후에는 중위권에 6개월 후에는 최상위 성적을 내었다. 주중 고사가 있었다. 매주 주요 과목 선생님들은 출제했고, 또 그 결과를 매주 복도 홍보판에 게시했었다. 종이에 일일이 써서 출제하던 시절이라 문제 선정과 출제에 어려움이 켰으나 오직 열정만으로 이 일에 몰입했다. 그런지 몰라도 성적은 일취월장했다. 몰론 모든 선생님들이 저녁 11시까지 무보수 자율학습 지도를 했다. 봄에는 한라산에서, 또 학력고사 100일 전엔 교정에서 입시 기원제를 지냈다.

입시에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학생들은 평준화 제도에 의하여 학교별 선발고사가 아니라 연합고사를 거쳐 배정된 학생들이었다. 그런데도 서울대만 재학생이 26명 합격하여 전국을 놀라게 했다. 아마 이 학교에서 전무후무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후회되는 일들도 너무 많다. 사랑이라는 구실로 매를 들었던 일들, 바쁘다는 핑계로 상담을 게을리 한 일, 성적을 기준으로 진학을 강요했었던 일, 세심하고 따뜻하게 보살피지 못했던 일들이 나를 후회스럽게 한다.

제자들의 얼굴에도 주름지고 희끗한 머릿발 위로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하물며 마음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번민과 어려움이 여전히 서려있을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부모 눈에는 자식들이 아이들처럼 보이듯이 우리 눈에는 여전히 순진하고 착하고 열심인 10대 소년들처럼 보인다. 엊그제 떠올랐던 한가위 둥근 달처럼 내일은 그들에게 더욱 빛나는 미래와 풍요로운 행복이 함께 하길 기도하며 어둠속에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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