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와 종처럼 매달린 꽃
풍경소리와 종처럼 매달린 꽃
  • 제주신보
  • 승인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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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전 제주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정호승은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고 되씹었다.

넓은 칸나잎 주위를 나선모양으로 휘돌던 솔바람이 서걱서걱 소리를 만든다. 이 소리를 맛보는 사이에 천왕사 대웅전 풍경소리가 귀에 머문다. 아흔아홉골이 만든 허허로운 바람소리는 풍경소리의 동반자가 된다. 천왕사의 풍경은 주위 수목과 조합이 금상첨화이다.

바람소리, 풍경소리, 그리고 목탁소리는 다른 의미를 품고 온몸을 진동시킨다. 정갈하게 비질한 경내를 걸을 때 풍경소리가 마중나오면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진다. 이 풍경소리는 복잡한 생각에 억압된 몸, 고리타분한 틀에 억압된 감각을 되살려내는 과정을 잔잔하게 묘사하는 작품이다.

풍경소리와 목탁소리는 시기와 반목, 증오와 원망, 소음과 추함을 녹이고, 용서와 사랑, 순수와 진실, 청결과 화목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정적과 평온이 혈액을 따라 온몸에 번지면서 모든 생각을 멈추게 한다. 연꽃의 생태처럼 오탁세계에서도 풍경은 은은한 꽃내음을 품고 맑은 소리를 잉태하고 있다. 이들 소리는 조촐한 행복감의 근원이다.

칸나잎은 어긋나고 30~40의 넓은 타원형이며, 밑부분이 잎집이 되어 줄기를 감싼다. 칸나잎의 정겨운 서걱서걱 소리가 풍경소리를 불러왔고, 겸손한 풍경의 모양이 더덕꽃을 더듬게 했다. 더덕의 속명 Codonopsis종처럼 매달린 꽃이라는 뜻이다.

정숙한 더덕꽃이 눈길을 유혹한다. 덩굴에 조롱조롱 종모양으로 매달린 꽃망울, 바깥쪽으로 살짝 말아 올린 다섯 갈래의 연녹색 꽃잎이 앙증스럽다. 종 모양의 통꽃을 들여다보면 자갈색의 속살이 자연의 색깔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바람 한 줄기에 의한 더덕꽃 향기는 멀리까지 다양한 언어로 자신을 표현한다. 물론 잎의 떨림도 더덕의 표현 수단이다. 바람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더덕이 울리는 종소리가 마음 속 깊이 퍼진다.

종처럼 매달린 꽃풍경이 연출하는 향기와 소리가 하나가 되어 오케스트라가 연주될 때 정신적육체적 건강한 숲이 조성되고, 삶에 질이 고양될 것이다. 바람의 연출자에 의한 풍경과 더덕의 명연기는 가히 일품이다.

섬유질이 풍부하고 씹히는 맛이 좋아 산에서 나는 고기로도 불리는 더덕뿌리는 칼륨, 철분, 칼슘, 인 등의 무기질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고기류와 함께 섭취하면 제격이다. 또한 이에는 다량의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어 혈관질환과 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 더덕의 주된 성분 중 하나인 이눌린은 혈당 조절을 돕는 천연 인슐린으로 불린다.

더덕은 고향 맛이다. 이의 뿌리를 북어처럼 세로로 쪽쪽 찢어 먹으면 쌉싸름한 듯하면서도 달큼한 맛이 난다. 예전에 어머니는 고추장 양념으로 더덕 무침을 해주셨다. 더덕 요리에 고추장을 사용하는 것은 찬 성질에 뜨거운 성질을 넣어 조화를 맞춰주는 것이다. 잔뿌리가 많은 것은 말린 후 물을 끓였다.

더덕의 꽃말은 성실 또는 감사이다. 꽃말이 한 해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가을이라는 계절과 의미가 닿아있는 느낌이다. 더덕은 그렇게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식량을 얻는 작은 곤충에게도 약재를 얻는 사람에게도 더덕꽃은 고마운 존재이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함을 더덕꽃은 암시하고 있다. 이번 가을에도 풍경소리와 더덕꽃 향기가 가정에 충만하길 기원한다

우리도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세상을 정화하면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소리를 만들 수 있길 염원한다. 우리도 더덕이 창조하는 향기의 신비계를 음미하면서 이에 감사할 때 지구는 인간의 건강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