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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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석, 제주대학교 경영정보학과 교수/논설위원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군사력과 과학기술 그리고 경제력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미국은 땅덩어리도 넓지만 또한 세계 각지의 우수 인재들이 대학교로 몰려들어 기초학문과 새로운 산업을 일굼으로써 세계 경제를 주도해 왔다. 예를 들어, 레이더로 잡히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한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고 있다. 적극적으로 인재를 받아들였던 미국과 달리 게르만 우월주의를 주창했던 독일 히틀러는 지식인들을 탄압했다. 13만 명의 지식인들이 히틀러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그 당시 히틀러는 사과나무를 정신없이 흔들어 댔고, 미국은 땅에 떨어진 사과를 열심히 주워 담기만 하면 되었다. 과학기술과 예술 그리고 컴퓨터 산업을 미국이 주도하게 된 것은 적극적으로 인재를 받아들인 개방정책 덕분이었다.

1920년대 말에 인구밀도로 보았을 때 똑똑한 인재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은 오스트리아 빈이었다. 이 당시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논리학, 수학 분야에서 뛰어난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토론했다. 빈 학파의 모임은 1936년에 히틀러를 맹신했던 광신도가 빈 학파를 만든 모리츠 슐리크를 암살하면서 끝이 났다. 일 년 뒤에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였고, 독일은 제일 먼저 슐리크를 암살한 범인을 석방하였다. 히틀러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나치 이념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체포하였다. 현대식 건축과 디자인을 만든 바우하우스 학교의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으로 갔다. 미국에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 연구소를 만든 장본인은 아브라함 플렉스너이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의 고등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상대성 이론을 제시한 아인슈타인, 수학의 불완전성을 증명한 쿠르트 괴델, 컴퓨터의 기초를 만든 앨런 튜링과 폰 노이만, 에리히 프롬, 피터 드러커, 조지프 슘페터 등 당대 최고 학자들을 초빙하고 그들을 지원하였다.

인터넷을 이용하다 보면 읽기 힘든 글자가 무엇인지 입력하도록 요구받는다. 스팸 가입자를 막으려고 컴퓨터 사용자가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묻는 ‘캡차’ 프로그램이다. 과테말라 출신의 루이스 폰 안은 미국의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유학하였다. 그는 캡차 프로그램에 글자를 입력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는 사람만 할 수 있고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캡차를 생각하다가 디지털 정보로 바꾸기 힘든 고문서 복원작업에 캡차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사람들이 리캡차를 입력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고문서를 해독하는 것이다. 리캡차 아이디어는 크라우드소싱의 시초가 되었다. 미국의 구글 회사가 루이스 폰 안의 리캡차 발명 특허를 사들였다. 구글은 리캡차를 이용해 1억3000만 권의 책을 디지털로 바꾼다. 과테말라 유학생의 아이디어는 미국의 구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온라인 도서관을 갖게 만들었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의 영향으로 미국 대학에 진학을 희망하는 외국인 지망자가 줄고 있다. 특히 중동 출신 지원자가 급감하였다. 아울러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때문에 중국 학생들이 미국 대신 영국을 택하는 비율이 작년보다 30% 증가했다. 열린사회에서는 연결이 융합으로 바뀌면서 선순환이 일어난다. 열린사회는 누구의 이득이 누구의 손해가 되는 제로섬 사회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에게 더 많은 파이를 돌려주는 포지티브섬 사회이다. 열린사회가 발전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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