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우리와 숲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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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대표·산림치유지도사/논설위원

“어려 어으 어려려려려…” 테우리의 구성진 목소리가 숲과 오름의 들판으로 울려 퍼진다. 뿔뿔이 흩어져 풀을 뜯던 소들이 잠시 먹이활동을 멈춘다. “귀에 익숙한 소리인데 어디에서 나는 것일까?”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고 동그란 눈으로 주위를 살핀다. 이때 테우리는 다시 한번 큰소리를 내며 부른다. 그러자 소들이 하나둘씩 테우리가 있는 쪽으로 느릿느릿 모여든다.

이는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중산간 목장지대나 상산 지대에서 많이 봤던 풍경이다. 당시에는 가정마다 적어도 한두 마리씩의 소를 길렀다. 추운 겨울에는 외양간에 가둬 놓았다. 새 풀이 돋아나는 청명 절기가 돌아오면 이들을 들판에 풀어놓는다. 이때는 소들도 해방이 된 듯 뒤발을 걷어차며 뛸 듯이 기뻐한다. 그렇게 시작한 방목은 봄과 여름, 가을을 넘어 초겨울까지 이어진다. 하늬바람이 쌀쌀하게 불고 풀이 마를 때가 되면 다시 외양간으로 몰아넣는다.

방목하는 곳도 가리지 않았다. 싱싱한 풀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능했다. 심지어 백록담에서도 방목이 이뤄졌다. 이처럼 소를 위한 테우리의 활동무대는 끝이 없었다. 드넓은 숲과 오름은 테우리의 생활터전이다. 그곳에서 여러 날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테우리의 생활상을 사실대로 그려낸 소설이 있다. 오성찬의 『한라산』이다.

그 내용에는 테우리의 상산 생활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우선 추운 고산지대 날씨에 입고 다녔던 옷가지를 들 수 있다. 이를 보면 신발은 험준한 산길에 다닐 수 있는 갑실신을 신었다. 여기에 감물 들인 갈잠방이와 두툼한 쇠가죽 옷을 입었다. 소지품이나 음식을 넣는 배낭은 새끼(띠)로 엮어 만든 약돌기이다. 그리고 손에는 윤노리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둘째는 산길에 배를 든든하게 하는 음식을 들 수 있다. 밥은 팥을 섞어 만든 반지기밥이다. 이에 곁들여 고구마 썬 것을 섞어 만든 메밀범벅과 고구마 가루로 만든 둥근 둘레떡, 그리고 좁쌀 오메기떡이 주종을 이뤘다.

셋째는 테우리 직업의 전문성을 들 수 있다. 테우리는 상산의 지형지물뿐만 아니라 시차에 따라 어느 곳에서부터 싱싱한 풀이 자라는지에 대한 식물상까지 알고 있다. 선작지왓을 비롯해 영실·오백장군·윗세오름·물장오리·흙붉은오름·사라오름·장구목과 심지어 백록담까지 소가 다니는 길이나 쉬는 장소 등을 꿰뚫고 있다.

넷째는 변화무쌍한 고산지역 날씨 예측력을 들 수 있다. 검은 먹구름이 백록담 등성이를 덮기 시작하면 곧바로 궤로 몸을 피한다. 테우리들은 유사시 비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궤들이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알고 있다.

다섯째는 방목관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숲치유를 들 수 있다. 소를 돌보기 위해 걷는 활동은 기본이다. 다리가 지칠 정도로 많은 시간을 걷는다. 그리고 망동산에 올라 소들의 동태를 살피며 쉰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까지 보는 즐거움이 있다. 숲이 제공하는 머루 등 각종 열매를 따 먹으며 건강을 보충한다. 때로는 직박구리나 동박새의 고운 소리를 들기도 한다. 그 결과, 테우리 몸은 마른 편이지만 단단한 근육질로 이뤄졌다. 얼굴과 피부는 거무스름하게 탔다. 성격은 차분하면서도 참을성이 강했다.

이를 볼 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건강 지킴이 숲치유 활동의 전신을 테우리활동에서 찾는 것은 어떤가 생각한다. 이를 통해 사라져가는 제주의 소중한 테우리 전통문화를 테우리요법으로 재창조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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