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의 매력을 되찾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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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생 수필가

꽤 된 듯하다. 높기도 하지만 가파르다 보니 오르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구좌의 자랑이라며, 구좌에 오면 기를 받고 가야 한다며 안내를 자청했다. 언젠가 가슴 벅찼던 정상에서의 풍광을 그리며 위풍당당하게 출발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데 뭔가 모를 갑갑함에 가슴이 먹먹하다. 이 엉킨 답답함을 무엇으로 풀어 줄까, 큰 숨으로 맑은 공기부터 폐부 깊숙이 들이마신다.

오랜만에 다랑쉬 정상에서 성산일출봉과 마주했다. 해발 380여 높이에서 바라본 일출봉은 어느 시인의 술잔에 채워진 채 고독을 즐기고 있다. 온몸으로 고독을 덕지덕지 바르고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의 고독과 그리움을 잠시 정상에 걸쳐 놓고 분화구 둘레를 돌기 시작했다.

세월의 흐름일까. 분화구 둘레가 터널을 이룬다. 주변을 가린 소나무가 좁은 오솔길을 만들었다. 십여 년도 훨씬 전이었을 것 같다. 다랑쉬를 탐방하며 사방의 자연을 품에 안았었다. 동쪽으로 성산일출봉을, 남쪽으로는 오름 군락을, 서쪽으로는 비자림을 그리고 북쪽의 드넓은 평야는 망망대해였다.

조금 전 탐방로를 오르며 느꼈던 답답함을 이제 알 듯하다. 이건 아닌데 가슴이 허하다. 그때만 해도 다랑쉬 분화구는 남동쪽 몇 십 미터 빼고는 소나무 숲이 없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여유롭게 분화구 둘레를 돌고 또 돌았었다. 분화구를 탐방하며 주변의 경치를 즐기는 것은 오름 중에 으뜸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남쪽은 몇 십 미터 빼고 모두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서쪽이 덜한데, 이곳 또한 머지않아 터널을 이룰 만큼 작은 소나무가 한창 군집을 이루고 있다.

1970년대 이전 다랑쉬 오름에는 나무가 없었다고 한다. 어려웠던 시절 땔감으로 베어내기도 했지만, 산림녹화 운동으로 식재하면서 지금의 오름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심은 소나무의 솔방울이 떨어져 싹을 띄우고 또 틔우니 얼마 안 가 오름 전체가 소나무 군락을 이룰 것 같아 안타깝다.

분화구 둘레의 시야를 가리는 소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오름 훼손이 더 문제가 된다. 차선책으로 전망을 가리지 않는 선에서 웃자라지 않게 전정 작업으로 조망을 되찾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서 서쪽의 30㎝ 미만의 소나무도 더 자라기 전에 다른 데로 옮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랑쉬의 매력은 정상에서 사방의 수려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다 조만간 다랑쉬 정상의 경관은 기억으로만 간직하게 될 것 같다. 새천년 들머리인 2000년에 일출을 맞이했던 북동쪽은 그때 그 사람 수만큼이나 이제는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탁 트인 전망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오른다. 다랑쉬 탐방로 또한 예외는 아니다. 어느 지점에서든 오르다 잠시 뒤 돌아서면 일출봉이, 우도가, 지미봉이 늘 우리를 쫓고 있었다. 한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부지런함이다.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이라고 격려도 잊지 않았다. 그때를 추억으로 묻어버리기엔, 제주도의 자랑, 제주 최고의 백미였기에 아쉽다.

다랑쉬 본디 모습을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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