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제주선인들의 멋과 풍류 따라 걷는 시간여행
옛 제주선인들의 멋과 풍류 따라 걷는 시간여행
  • 제주신보
  • 승인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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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 민속자연사박물관에 6기·삼성혈 인근에 8기 서 있어
관덕정·제주성 남문·산지천변 등에 있던 몇 기 이곳으로 옮겨와
방문객에 각인 위해 ‘돌하르방 광장·올레’ 명칭 붙여 홍보키로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주차장에 있는 돌하르방 모양의 철제 구조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주차장에 있는 돌하르방 모양의 철제 구조물.

지난 탐라·고을·병담길에 이어 이번호부터 동성(東城돌하르방길을 따라 걷는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동성(東城)을 따라 만나는 돌하르방과 함께 원도심 역사문화 기행도 함께 펼쳐진다.

민속자연사박물관에 자리한 돌하르방을 시작으로 삼성혈 돌하르방을 만나본다. 또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돌하르방이 자리잡았던 곳곳을 둘러본다.

이번호에서는 민속자연사박물관의 돌하르방, 삼성혈 돌하르방을 둘러본다.

 

민속자연사박물관 돌하르방 광장(주차장)

동성(東城돌하르방 길의 출발지점은 삼성혈 동쪽에 위치한 민속자연사박물관 주차장이다.

자연사박물관에는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4기의 돌하르방이 있고 특히 주차장 입구에는 돌하르방 2기가 서 있다.

방문객들은 주차장 입구에 있는 그 돌하르방 둘을 여느 돌하르방처럼 대한다.

하지만 제주읍성에 세워졌던 24기 중의 돌하르방으로, 제주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된 돌하르방들이다.

또 제주에서 최고로 높은 돌하르방 철제 조형물이 주차장 서쪽 편에 우뚝 서 있다.

세계 섬문화 축제 당시 제작된 것을 이곳에 옮겨 전시하고 있다. 어느 방향에서나 똑같은 돌하르방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삼각구조(삼발이)로 돼있으며, 한명섭 작가의 작품이다.

질토래비는 이의 중요성을 방문객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이곳 주차장 이름을 돌하르방 광장이라 칭하고자 한다.

이후 관계 기관과 협조하여 이곳을 돌하르방 광장이라 부르도록 지속적으로 홍보하고자 한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입구에 있는 돌하르방.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입구에 있는 돌하르방.

자연사박물관 초입에 선 돌하르방

제주민속자연사 박물관 주차장 입구에 돌하르방 2기가 마주보며 서있다. 이전까지 관덕정에 위치하고 있던, 6기의 돌하르방 중 2기를 옮겨온 것이다.

돌하르방의 코와 관련해 많은 일설들이 제주에 전한다.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기 이전 1970~80년대 제주는 국내에서 가장 각광 받는 신혼여행지였다.

돌하르방의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에 따라 관광지 마다 신혼부부가 줄을 서서 코를 만지며 사진을 찍던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또한 오래전부터 돌하르방의 코를 빻아 가루를 내서 먹으면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인이 아기를 가질 수 있다고도 하며, 이와는 정반대로 임신한 여인이 가루를 내서 먹으면 태()가 지워진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삼성혈 돌하르방 올레

삼성혈 입구에도 제주도민속자료 2호로 지정된 돌하르방 4기가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제주올레의 올레는, 제주고유의 올레와는 그 의미가 매우 다르다.

제주는 바람의 섬인 만큼 제주의 집들은 바람을 덜 받기 위해 납작 엎드린 형상으로 낮게 짓곤 했다.

마을 한길가에서부터 대문까지 돌담으로 에워싼 골목으로 이어지게 구조화 했다. 그 골목길이 제주고유의 올레인 것이다. 올레로 이어진 아늑한 곳에 안거리, 밖거리, 셋거리 등 건물을 배치해 집을 지었던 것이다.

세찬 바람이 골목 담벼락을 스치며 훈풍 돼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설계한 제주선인들의 지혜가 놀랍다.

제주속담에 올레가 길면 명(壽命)도 길다라는 말이 있다. 한 겨울 바람을 맞으면 몸에 해로우니, 담으로 만든 올레를 지난 바람이 훈풍 되어 집에 이르도록 하는 슬기로운 건물 배치를 했던 것이다.

이를 도내·외에 알리기 위해 삼성혈 입구를 돌하르방 올레라 명명하고자 한다.

 

1950년대 삼성혈 입구 돌하르방의 모습.
1950년대 삼성혈 입구 돌하르방의 모습.

삼성혈 돌하르방 골목

삼성혈 입구에서 건시문에 이르는 골목에 4기의 돌하르방이 위치하고 있다.

삼성혈 입구에 있는 돌하르방 2기는 제주성 남문(정원루) 입구에 세워져 있던 것이 성문의 훼손과 함께 이곳으로 오게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시문 앞 2기는 산지천변 인근에 있던 삼천서당이 폐교되면서 명승호텔 앞으로 세워졌고, 1963년 현재 자리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