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유동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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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희 수필가

지난 9월 4일부터 8일까지 제주혼듸독립영화제가 열렸다. 관객 심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어 여러 편의 영화를 보았다. 총 36편의 경쟁작과 6편의 초청작이 상영되었다.

개막작으로 정다운 감독의 건축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를 관람했다. 유동룡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축가의 생애와 그의 건축 철학을 조명한 작품이다.

제주의 핀크스 포도호텔, 방주교회, 두손 박물관 등 제주에도 여러 곳에 작품이 산재해 있다. 2009 제주영어교육도시 개발 사업 건축 총괄책임을 맡기도 했다. 그의 작품 중 최고의 역작인 핀크스 골프장의 포도호텔은 제주의 오름과 초가집의 이미지를 살려 지어졌다. 프랑스 슈발리에 예술문화훈장을 받게 된 건축물이다.

시즈오카현의 시미즈에서 후지산과 바다를 보면서 자란 이타미 준은 조센징이라 무시당하며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고뇌를 갖고 살아야 했다. 경계에서 길을 만든 그의 삶은 곤고했다. 한국이나 일본, 어디에서건 디아스포라로 살았던 그가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이다.

작품을 발표할 때나 항공기를 이용할 때 일본에서 쓰이진 않는 활자인 그의 성 ‘유’자 때문에 곤란을 겪다 이타미 준이라는 예명을 지었다. ‘이타미’는 처음 비행기를 이용했던 공항 이름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끝까지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지켰다.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일감을 얻기도 어려웠다.

첫 클라이언트는 재일 한국인 여성인데, 제주 출신이었다. 아파트 리모델링을 맡겼다. 그 인연으로 이타미 준은 제주를 찾게 되었고 제주의 풍광에 매료되었다.

매우 깊은 어둠-절대 고독의 표출로 상처 입은 도시를 치유하기 바랐던 그의 마음은 홋카이도에 석채의 교회, 벚나무와 대나무의 건축인 먹의 공간에 스며있다.

밝음과 어둠 사이, 그러나 나의 눈길은 어둠에만 쏠리고 있다고 고백하는 모습에서 내면의 본질적인 고독감을 엿볼 수 있다. 경계인으로서 느끼는 비애인지도 모른다. 특히 서울대 도서관을 허물 때 나온 벽돌을 재활용하는 따뜻한 건축은 그의 철학을 대변한다. 벽돌이 지닌 기억과 시간의 맛을 되새김질하는 Bar ‘주주’는 서울에서 일본까지 배송되어 온 자재들로 만들어진 곳이다. 4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탄탄하다는 일본인 사장의 말에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이 넘쳐난다. 제주의 아름다운 영상미와 그리움을 담은 주변인들의 인터뷰는 참 좋았다. 그중에서도 일본인 건축가 한 사람은 “이타미 준의 건축을 모방했다는 얘기를 들어도 좋다. 그는 대단한 건축가이다.”라는 말에서 그의 위대함이 빛난다.

잘 만들어진 공간은 노후도 더디고 그곳에 깃든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이타미 준의 건축은 무겁지만 따뜻하다.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건축가가 된 큰딸 유이화 씨는 “중간에 멈추지 마라. 끝까지 가야 한다. 현장에서는 야쿠자가 되어라.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조언을 기억하고 있다.

건축가로서 애써 지은 것을 허물고 다시 짓는 일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현장에서의 잡음과 마찰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건축가이자 미술가인 유동룡, 이타미 준의 건축이 제주에 있다는 건 축복이다.

내면의 어둠을 뛰어넘어 역사를 초월했다는 내레이션이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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