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에 부는 억새바람
오름에 부는 억새바람
  • 제주신보
  • 승인 201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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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자 수필가

다시 병이 도졌다. 억새가 필 무렵이면 누가 발을 묶어놓은 것도 아니련만 날마다 일탈을 꿈꾸는 가을 병.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면 되는 것을 붙잡아 앉히는 이유도 가지가지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만들어 놓은 덫에 내가 걸려들어 허덕이는 꼴이다. 변명이라도 하듯이 어디를 가더라도 작년에 보았던 풍경이 눈치 못 챌 시간을 덧입고 펼쳐져 있을 거라고, 스스로 달래다가 길을 나섰다.

새별오름은 온통 억새다.

역사적 유래를 찾아보면 칼과 방패가 바다를 뒤엎고 간과 뇌가 땅을 가렸다목호의 난의 격전지였다. 참혹한 역사를 세월 속에 묻고 유려한 자태로 의연하게 앉아있다. 다섯 봉우리를 이은 모양이 별표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새별오름. 익어가는 억새 물결로 가을의 중심에 있다.

오름을 향해 발을 내디딘다.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바람결에 흐르는 세월을 감지하며,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다가오는 가파른 등성이에 호흡이 거칠어진다.

잠시 앉아 숨을 고르며 주위를 돌아본다. 여행을 떠나온 이들이 제주의 가을을 음미하며 탄성을 지르고, 추억의 흔적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사람도 자연의 품 안에서 은빛 억새와 어우러지니 스스로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억새 그늘에서 보라색 풀꽃이 저를 보라는 듯 눈길을 잡아끈다. 그 유혹에 끌려 카메라를 꺼내 들고 엎드린다. 꽃은 바람이 이끄는 데로 햇빛이 비치는 데로 모습을 바꾼다. 억새 더미 그늘에 핀 들꽃 한 송이를 담기 위해 나는 사지가 뒤틀리는 난감한 자세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다가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체투지의 시간은 몇 컷의 그림으로 카메라에 저장되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드러누워서라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어쩌지 못하는 욕망. 모든 것 잠재워두고 감실거리는 바람에 눈을 감아버리고 귀만 열어 두면 어떨까.

익어가는 억새 위로 햇살이 내려왔다. 순식간에 은빛 물결을 이루는 억새는 바람에 흔들리며 운다. 눈을 감고 들으면 모래톱을 핥으며 스러져가는 파도소리와도 흡사하다. 녹슨 추억의 흔적을 더듬으며 내 귀는 스물다섯 살의 바닷가로 달려간다. 현실과 동떨어진 자신을 추스르며 넘어가야 할 벽 하나를 앞에 두고 무던히도 애쓰던 시절, 어둠이 내린 바닷가로 달려가면 차분히 위로해주던 그 파도소리.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허물어내지 못하는 벽을 앞에 두고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가슴 두근거릴 추억의 소리가 살아있음에 눈물이 난다.

두런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일어선다. 그들의 말은 바람에 날려 걸음보다 앞서 달려간다. 미칠 듯이 흔들어대는 억새의 오름을 오를 때는 대화란 그저 독백에 지나지 않는다. 쓸려가고 쓸려오는 억새 물결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면 내 몸이 흔들리는 것인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들의 요구대로 나도 하나가 된다.

오름 정상에 서니 가파르게 몰아치는 세찬 바람에도 거침없는 몸짓으로 현란하고도 질서 정연하게 흔들리는 억새 들판이 펼쳐진다.

마디마디 꺾어질 듯 휘어지면서도 도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억새는 그리움도 한도 켜켜이 숨기고 어둠의 들판에서 이슬처럼 사라져 간 영혼의 울음 토해낸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꿋꿋이 견디며 살아남은 제주인의 혼을 닮은 억새, 하나일 때보다 모여서 피어야 아름다운 것인가.

현란한 은빛 군무 위로 무딘 촉수를 내밀어 가을을 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