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박물관의 변신
감귤박물관의 변신
  • 제주신보
  • 승인 2019.10.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문기, 사회2부장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헌장(憲章)은 박물관을 ‘예술·역사·미술·과학·기술에 관한 수집품 및 식물원·동물원·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표본 등을 각종의 방법으로 보존하고 연구하여, 일반 대중의 교육과 오락을 위하여 공개 전시함을 목적으로 이룩된 항구적 공공 시설’로 정의하고 있다.

주요 문화시설의 하나로 꼽히는 박물관은 그 나라와 지역의 인문적인 감수성과 지적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독특한 민속문화가 있는 제주는 1990년대 초에만 해도 민속과 고고학 자료를 갖춘 제주대학교박물관,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교육박물관 등 국·공립 박물관이 주를 이뤘다.

이후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한 상업시설이 ‘박물관’이란 이름을 내걸면서 제주는 ‘박물관 천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제주특별자치도에 등록된 박물관 총 62개(제주시 27개, 서귀포시 35개) 가운데 국·공립은 11개로 사립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도내에 산재해 있는 박물관 중 다수는 미흡한 소장품, 부실한 자료, 큐레이터 등 전문 인력 부족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아 박물관의 위상은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진 게 현실이다.

예술과 역사, 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가 날로 커져가는 시점에서 지역사회에서도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서귀포시가 2017년부터 감귤박물관 활성화를 위한 자료 수집과 함께 영농 1세대를 찾아 구술 채록에 나서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귀포시가 2005년 2월 신효동 월라봉 일원 9만8426㎡에 조성한 감귤박물관은 지금까지 245억원이 투자됐지만 감귤과 관련된 역사 유물이 많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서귀포시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감귤 관련 고문서 등 790점을 추가로 수집한 데 이어 올해에는 감귤산업 태동기에 활동했던 농업인을 발굴해 감귤 농사와 관련된 생생한 증언을 채록했다.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두 달 동안 진행된 채록 작업에는 26명이 참여해 감귤 농사를 짓게 된 계기에서부터 역경을 극복한 사례, 대학나무 이야기 등을 풀어냈다.

이를 통해 1938년 아홉 살이던 해 부친이 일본인으로부터 감귤과수원을 사 농사를 지었다는 이야기, 1940년대 초반까지 도민들은 감귤을 먹지 않아 일본인들에게 팔았다는 내용 등 다양한 증언이 나왔다.

1941년 기준으로 감귤 시세가 3.75㎏(1관)에 1원50전이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외에도 영농기술이 없어 일본에서 전문잡지를 구해 감귤 농법을 배웠다거나 접을 붙일 때 비닐이 없어 억새로 순을 묶고 빗물을 막기 위해 소라껍데기를 순 위에 올렸다는 내용 등 풍부한 이야기가 채록됐다.

감귤 농사와 관련해 당시 농민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채록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귀포시는 내년에도 자료 수집과 함께 추가 채록에 나서 가칭 ‘제주감귤 발전 100인에게 듣다’를 제목으로 내건 책자를 제작할 계획이다. ‘별 볼 일 없는 박물관’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감귤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박물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박물관이 살아야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고 도시가 산다.

감귤박물관 사례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박물관 활성화를 위한 변화의 노력에 주목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