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牧子)의 삶에 바치는 아름다운 헌사
목자(牧子)의 삶에 바치는 아름다운 헌사
  • 제주신보
  • 승인 201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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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김만일 묘역
전쟁으로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하기 위해 말을 보내다
바람·구름뿐인 오름 위에서 한평생 말을 생산하고 관리
바람난장 문화패가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김만일 묘역 일대를 찾았다. 헌마공신 김만일은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기울어지던 시절 수 천 필의 말을 나라에 바쳐 국난극복에 큰 공헌을 했다. 이미선 作, 치유의 정원-오름에서.
바람난장 문화패가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김만일 묘역 일대를 찾았다. 헌마공신 김만일은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기울어지던 시절 수 천 필의 말을 나라에 바쳐 국난극복에 큰 공헌을 했다. 이미선 作, 치유의 정원-오름에서.

헌마공신 김만일

그의 삶에 바치는 아름다운 헌사

제주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 석 자 모를 리 없다. 전쟁으로 위기에 놓인 나라를 위해 말을 바친 인물, 조선의 역사 한 페이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제주인, 헌마공신 김만일(金萬鎰 1550~1632). 그 귀한 이름이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바람난장 앞에 섰다.

태풍의 영향으로 김만일 묘역에서 펼쳐질 예정이던 무대는 의귀리마을회관으로 옮겨졌다. 오늘도 환한 미소로 인사말을 건넨다. 연극인 정민자 님이다. ‘헌마공신의 유래를 다시 한 번 설명하며 의귀리 편 바람난장의 의미를 강조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김만일을 추모하며 무대를 채워갔다.

물로 뱅 돌아진 섬. 아무도 눈 돌리지 않았던 작은 땅.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사람 살 곳이 못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을까. 오죽했으면 조선은 이 작은 섬에 죄 많은 이들만 보냈을까. 그 보잘 것 없던 변방의 섬이 을 내고 만다. 임진왜란을 비롯해 숱한 전쟁으로 나라가 기울어지던 시절. 김만일은 수 천 필의 말을 나라에 바쳤다. “국난극복에 커다란 공헌을 한 김만일의 공과 그의 후손들이 해 온 일은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업적이라는 김부일 님(김만일기념사업회장)의 눈빛이 반짝인다.

빛나던 과거의 영광도 흘러가는 세월 앞에선 속수무책인 것일까. 한 때는 명마산지, 국영목장의 권위를 누리던 제주가 말이나 보낼 곳으로 치부되던 때가 있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모두가 육지로 출가할 때, 말에 매인 동생의 삶이 누이는 퍽이나 슬펐나 보다. ‘말울음이 배어있는 삶이 고삐 대물림하듯이어지는 모습이 애달팠나 보다. 김정희와 시놀이 팀의 낮지만 깊은 울림이 울려 퍼진다.

내 가계 내력에는 말울음이 배어있다
임진란에 전마를 진상했다는 할아버지
그 고삐 대물림하듯 내 동생이 쥐고 있다
 
나를 따르지 마라
폭풍의 화가건너간 길
조랑말도 아버지도 다 떠난 황톳빛 들판
산마장 전세를 내어 말의 길을 가고 있다
 
음력 삼월 묘젯날엔 오름에도 절을 한다
고사리에 콩나물, 빙떡에 옥돔구이
누우런 말 오줌 냄새
따라가는 산딸기꽃
 
- 김영순/ ‘갑마장길 1 -나를 따르지 마라’(전문)
이태주씨가 ‘밤하늘의 트럼펫’과 ‘you raise me up’을 트럼펫으로 연주했다. 바람과 구름뿐인 오름 위에서 일생을 말에 바친 목자의 삶의 감사와 위로를 건낸다.
이태주씨가 ‘밤하늘의 트럼펫’과 ‘you raise me up’을 트럼펫으로 연주했다. 바람과 구름뿐인 오름 위에서 일생을 말에 바친 목자의 삶의 감사와 위로를 건낸다.

목자(牧子)의 삶은 자식 대까지 대물림됐다고 한다. 사는 곳을 옮기는 것도 하는 일을 바꾸는 것도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 국영목장은 오늘날 헌법에 해당하는 경국대전에 근거한 마정조직에 의해 운영됐는데, 목자는 한평생 말을 생산하고 관리에만 전념했다는 것이다. 바람과 구름뿐인 오름 위에서 일생을 말에 바친 외롭고 고독한 삶. 우리는 감사와 위로를 건넸다. 오현석 님의 리코더 연주 고향의 봄’ ‘바람의 빛깔’, 이태주 님의 트럼펫 연주 밤하늘의 트럼펫’ ‘you raise me up’이 이어진다.

누구랄 것이 없이 가난했다. 황량한 자연 뿐인 섬에서 삶은 빈한했다. 없는 살림살이에 내 것을 내준다는 것은 용기일까 미련일까. 그 날, 김만일은 수많은 말을 이끌고 뭍에 올랐다. 마치 유목민들의 거대한 이동처럼 말을 이끌고 조정까지 걷고 걸었으리라. 반도의 광야를 힘차게 누볐으리라. 김정희와 시놀이팀의 낭독에 그 역사적 장면을 떠올려본다.

김만일은 전주, 공주, 수원을 거쳐 보무도 당당히 한양으로 향했다. 아버지 김이홍이 앞장서서 달렸고 말을 모는 견마꾼들이 이리저리 뛰며 샛길로 빠지거나 주춤거리는 말들에게 채찍을 날렸다. 숭례문을 거쳐 도성에 진입할 때는 연도에 백성들이 나와 환호성을 질렀다.임금이 벌떡 일어나 뜰로 나갔다. 세자 광해군을 비롯하여 대소신료들이 들앞에 모여 있었다. 100마리의 전마가 일렬로 도열해 있고 그 옆에 갑옷을 입은 기마병들이 고삐를 잡고 있었다. 말들을 둘러보던 임금이 감격의 눈시울을 붉혔다.”(권무일 역사소설 헌마공신)

김정희와 시놀이 팀이 김만일이 수많은 말을 이끌고 뭍에 올랐던 장면을 기록한 소설 권무일의 ‘헌마공신’을 낭독했다.
김정희와 시놀이 팀이 김만일이 수많은 말을 이끌고 뭍에 올랐던 장면을 기록한 소설 권무일의 ‘헌마공신’을 낭독했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어쩌면 글자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넣어 살아 숨 쉬는 문장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가슴 벅찬 문장 한 줄 한 줄에 감동과 여운마저 느꼈다면 노래를 뛰어넘는 작품이고 예술이라 하겠다. 윤경희 님의 홀로 아리랑’, 황경수 님의 하망연(드라마 대장금 OST)’을 들으며 문득 든 생각이다. 특히나 의귀리 편 바람난장을 위해 세 번의 답사와 함께 김만일의 묘역을 찾아 인사를 올렸다는 황경수 님의 정성에 고개가 숙여진다.

바다 위 한 점의 섬. 작고 하잘것없던 고통스러운 땅. 역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공을 바치며 목숨을 부지해 온 수난의 땅. 그러나 마침내 조선이 인정한 땅. 거기엔 헌마공신 김만일이 있었다.

바람난장 문화패가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김만일 묘역 일대를 찾았다.
바람난장 문화패가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김만일 묘역 일대를 찾았다.

언젠가 오름 위에서 바람을 느꼈다면 잠시 눈을 감아보자.

푸른 초원에서 말들을 길들이던 그의 따스한 체취가

바람을 타고 우리를 찾아올지도 모른다.

사회=정민자
해설=김부일 (김만일기념사업회)
그림=이미선
시낭송=김정희 이정아
성악=황경수 윤경희
트럼펫=이태주
리코더=오현석
사진=채명섭
영상=김성수
음향=홍종철 고한국
=김은정
후원=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제주메세나협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