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新보가 제주 출신 인사 중 정치·경제·행정·교육·문화예술 등 각 분야에 걸쳐 독보적인 성과와 실적으로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분들을 강사로 초빙, ‘제주人(인)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제주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높이고 제주 미래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는 이번 아카데미는 대한민국 민법학 최고 권위자인 양창수 전 대법관을 시작으로 올해 연말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편집자 주】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한국사회가 헌법을 기본으로 하는 법치주의 국가로 바뀐 것 자체가 혁명입니다. 하지만 식민지 경험과 민족적 자존심 등 여러 문제로 그 혁명 이념이 제대로 구현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헌법에서 이야기하는 평등하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지난 4일 제주시 연동 제주웰컴센터 웰컴홀에서 열린 ‘제주 人(인) 아카데미’ 첫번째 강좌에 양창수 전 대법관이 강연자로 나섰다.
제주시 일도1동 출신으로 1970년 서울대 법대를 수석 합격한 양 전 대법관은 1974년 제1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과 육군 법무관을 거쳐 1979년 11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그 후 서울형사지방법원과 부산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한 후 1984년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돼 근무를 하다 1985년 판사직을 사직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민법연구에 매진했다.
그러던 2008년 이용훈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 2008년 9월부터 2014년 9월까지 6년간 대법관을 역임했으며 퇴임 후 지금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예비 법조인 육성에 힘쓰고 있다. 양 전 대법관은 이날 강연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 실현 과정을 토대로 헌법에 의한 법치주의에 대해 설명했다.
▲유교 이데올로기 벗어나 법치주의 사회로=양 전 대법관은 우리나라가 유교 중심의 사회에서 헌법 중심의 법치주의 사회로 변화했으며 이 변화 과정을 ‘혁명’이라고 설명했다.
양 전 대법관은 “과거 우리 사회는 양반 중심의 신분제 사회로 유교 이데올로기에 의해 움직이던 사회였다”면서 “하지만 1945년 우리나라가 해방돼 새 국가가 되면서 이념을 내건 것이 헌법이며, 이를 중심으로 하는 법치주의 사회로 변화했다. 국가의 사회운영원리가 180도 전환된 것. 그것이 혁명이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은 각 개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며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각자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꿈꾸며 만들어 진 나라”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관은 우리 역사 속 여러 가지 사안들로 인해 헌법이 그 이념을 다 이루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양 전 대법관은 “우리나라는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민족적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이를 되찾기 위해 긍지를 갖게 하는 요소를 강조하다 보니 전 세대와의 단절이 아닌 연속을 강조하게 됐다”며 “헌법적 이념에서는 사람에 가치를 다르게 보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야 했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면서 결국 개인보다 단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이 생겨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 발달과 함께 헌법 이념 재조명=양 전 대법관은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헌법의 이념이 제대로 발휘되지는 못했지만 이후 나라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이념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 전 대법관은 “과거 우리나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유지되면서 가부장적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됐다”며 “헌법의 기본적 이념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인데 남녀평등이 무너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제 할머니는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했고, 어머니는 교육은 받았지만 사회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아내는 번역가로서 열심히 일을 해 왔고, 내 딸은 해외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할 정도로 고도의 교육을 받았다”며 “할머니부터 어머니와 아내, 딸까지 총 4세대가 살아가는 모습부터가 큰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1960년대 민법을 살펴보면 여성의 상속권은 남성의 50% 수준이었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며 “경제적 여건이 너무 낮은 단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권리와 개인의 자유가 공허한 구호에 그친 단계였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진정한 가치 발휘해야=양 전 대법관은 이 같은 단계를 거친 대한민국이 현재에 와서 헌법의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관은 “대한민국이 해방되고 6·25전쟁을 거친 후 빠른 발전을 거쳐 이제 우리나라는 국민 소득 3만불 이상인 시대가 왔다”며 “이제는 여성들이 집안에서 살림을 해 가정을 가꿔야 한다고 말하면 도저히 먹히지 않는다. 인식이 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985년에는 서울대 법과대학 입학정원 중 여학생은 10%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40% 넘어가며 여성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법 앞에 모든 국민은 평등하고 성별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헌법이 그만큼 실현된 것”이라고 밝혔다.
양 전 대법관은 “우리나라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했고 세계가 다 이를 높이 평가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등 문제들이 남아있다”며 “이를 모두 해소하고 진정한 평등과 자유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