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 이제 생활이 되다
문화文化, 이제 생활이 되다
  • 제주신보
  • 승인 2019.10.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운진 동화작가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三百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니고잇슬테요 찰난한 슬픔의 봄을

영랑永郞 김윤식의 시모란이 피기까지는 끝부분이다. 1934년 시문학에 실린 이 시는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아마 다 들어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난 지난달에 강진을 여행한 일이 있었다. 영랑과 모란을 만났으며 다산초당과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사색의 길에서 다산茶山 정약용과 혜장선사도 만났다. 어인 일이었을까? 타임머신은 어느덧 나를 200년 전 강진에 내려놓았으니 말이다. 다산은 사색의 길을 걸으며 떠오른 심오한 생각들을 모아 실학을 집대성한 건 아니었을까?

영랑은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이라고 노래했지만 강진은 온통 문화로 채색彩色돼 있었고 마음을 치유하려는 여행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영랑생가뿐 아니라 시문학파기념관이 있는 세계모란공원에선 여행자들이 먼저 새벽을 열고 있었다.

서귀포 면적보다도 작은 강진군康津郡은 어떻게 역사와 문학 스토리텔링으로 주민들을 먹여 살릴 궁리를 한 것일까? 그 기발한 착상着想이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은 진정 마음치유가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치유의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면 어떠랴? 여행자나 순례자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기만하면 충분하다. 마음울림에 더하여 카타르시스까지 경험하게 됐다면 그곳은 진정 여행지를 넘어 성지聖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삶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고 싶다면 강진 사색의 길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 숲길에 들어서는 순간순간 치유治癒를 경험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영랑생가에 이어 모란공원 다산초당 백련사와 연계한 사색의 길과 함께 강진군 전체가 스토리텔링을 입힌 훌륭한 관광자원이었다. 제주는 어떨까? 제주를 먹여 살릴 만큼의 문화 관광자원은 있기나 한 것일까? 고작해야 이중섭 거리와 작가의 산책길 정도만이 스토리텔링으로 포장되어 있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제주는 지금 ‘2019대한민국문화의 달행사로 시끌벅적하다. 탐라문화광장과 산지천변에서 이루어지는 대형문화이벤트에 실려 이제 곧 문화가 꼬물거릴 것이다. 대한민국 문화의 달 제주를 비롯하여 제58회 탐라문화제 등 각종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진정 제주역사와 문학에 이야기를 입힌 축제를 열고 있을까하는 데는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이젠 역사와 문학에 이야기를 입히고 스토리텔링화해야 한다.

덴마크의 미래학자이자 소설가인 롤프 옌센은 미래는 감성을 팔고 사는 사회가 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문화가 이야기로 포장되고 상품화해야만 지속가능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얘기다. 미래는 문화가 지역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시대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미리 역사와 문학에 이야기를 입히려는 강진군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향유만 하던 문화文化, 이제는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