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과정과 정의
공정한 과정과 정의
  • 제주신보
  • 승인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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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순 수필가

요즘 우리 사회는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를 기치로 내세운 대통령의 국정철학 문제로 무척이나 시끄럽고 혼탁하다. 어느 폴리페서(Polifessor)의 입각에 따른 국회 청문회를 계기로 불거진 불공정 의혹 때문이다. 그는 진보적 사고의 소유자로 사회 전반의 개혁을 주창했다.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는가가 삶을 결정해 버리는 사회가 끔찍하지 않습니까’, ‘입시제도가 공정치 못한 시스템이 문제’, ‘장학금 지급 기준도 경제 상태 기준으로 옮겨져야 한다’ 등을 외치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행적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언행 불일치와 위선은 젊은이와 학생은 물론 대다수 국민에게 상실감과 박탈감을 주었다.

그는 문제가 되고 있는 딸의 입시 비리, 사모펀드, 사학재단 문제에 직접 관련이 없고 모른다고 하지만, 가족은 공동운명체이며 수신제가 평천하를 모르지는 않을 터. 누구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 수사를 통해 재판으로 밝혀질 일이다. 오늘날 일본의 무역보복 등 경제가 좋지 않고 지소미아(GSOMIA) 폐기 등 외교·안보 상황도 심상치 않다. 국력이 결집 되도 모자란데, 우리 사회를 이렇게 갈등의 정점으로 치닫게 하는 진실게임이 역겹고 보기가 싫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인권보장·표현의 자유·권력분립·복수정당제 등을 구성 요소로 한다. 그중에서도 자유와 기회의 평등·인권 보장은 최고의 가치이다. 법치주의에서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며,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선의의 경쟁을 통해 전력을 다한다. 진학과 취업·영업과 사업 생존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기회의 균등과 공정한 과정에서 벌이는 선의의 경쟁은 결과가 정의롭다. 반면에 불공정한 과정을 통해 쟁취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사회지도층 가족과 관련된 일련의 불공정한 과정을 보는 선량한 국민의 심정은 어떨까. 불공정 속에 파묻혀버린 선의의 상실감은 공분의 정도를 넘었다. 배우고 가진 자의 반칙이 통용되는 그들만의 리그, 정의사회를 갈망하는 국민은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주변에는 오늘이 어려워도 내일의 희망에 기대어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등록금을 마련치 못하는 학생,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사회적 약자, 어려운 취약계층도 많다. 그들이 사회지도층의 이러한 반칙을 생각이나 했을까. 무지하고 가난한 백성은 그들만이 벌이는 불공정 게임, 그들만의 리그를 모른다. 오로지 주어진 법 테두리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주변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은 오늘도 어두운 터널 속의 길을 해매고 있다.

부와 권력, 명성을 가진 사회지도층에게는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이다. 법적인 문제를 초월한 높은 도덕성, 정의를 요구받는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만 없으면 되는 게 아니라 법 이전에 도덕성과 정의가 있다.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지만, 실천하지 않는 사람에겐 국민의 시선이 차갑다. 우리 사회는 신분과 학식, 빈부의 차이를 넘어 남녀노소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