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빌레’
‘파파빌레’
  • 제주신보
  • 승인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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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제주에 이런 명품이 있었나. 한창 입소문 타는 곳인데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조천읍 와흘리에 있는 ‘파파빌레’. 연전 글을 올리던 신문사(제민일보) 사장을 지낸 신방식님이 그곳 대표다. 몸을 던져 가며 보물로 캐어낸 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 이런 낯없는 일이라니.

‘파파빌레’. 놀랍게도 한반도를 닮은 거대한 바윗돌이 가을 속에 누워 있었다. 도를 구획하는 경계선이 그어지고 분단의 선 DMZ도 선명하다. 사람이 조각한 게 아니라 자연이 그어 놓았으니, 신비 자체다.

애초, 땅속에 묻혀 있었다. 오랜 세월 숨었던 한반도 모형 바윗돌의 출토가 신기하기만 하다. 꿈에 선친이 현몽했는데, 동서남북 사신 얘기를 꺼냈다 하니, 더한층 신령스럽게 다가왔다. 영적 계시였을지도 모른다. 꿈이 땅을 파게 했다. 신 대표는 땅속에 묻힌 거대 암반을 밖으로 내놓는 게 곧 꿈을 실현하는 일이라 여겨 몰두했단다.

‘파파빌레’의 파파는 아버지의 서구적 표현, 빌레는 너럭바위의 제주말이다. 크고 조악한 돌이 빌레다. 땅 파는 역사(役事)가 간단없이 진행됐다. 파 들어갈수록 상상도 못하던 화산석이, 그것들의 축적으로 생성된 암석층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형형색색의 돌들, 우둘투둘 굴곡이 심하고 끝은 날카롭다. 일이 쉬울 리 없다. 인부들이 몸으로 때우다 못 견뎌 손을 내려놓던 얘기를 하며 회상 속에 씁쓸하게 웃는 신 대표. “외국인 근로자가 아니었으면 도저히 해 내지 못할 일이었지요.” 고비마다 힘겨웠던 걸, 밭은 그의 숨결에서 충분히 느끼고 남았다.

신 대표가 몸소 동선 따라 해설사역을 맡고 나선다. 1100도 넘게 펄펄 끓던 용암이 식어 엉키며 크고 작은 돌들을 탄생시켰다. 파이고 뭉치고 금 가면서 거기다 갖가지 문양을 아로새겼다. 신묘(神妙)를 얻어 기기묘묘하니, 당초 천공이지 인공이 아니었다. 돌들이 고스란히 제 모습을 나타내도록 파고 또 파들며 흙 알갱이 한 톨까지 털어내 보물로 내놓은 섬세한 손놀림을 찬탄한다. 눈길이 가 닿는 곳마다 터뜨리노니 감탄, 감탄이다.

문득 움푹 파인 한곳에 섰다. 음이온이 새어나오는 곳이다. 큰 숲이나 개울가에서 나온다는 음이온이 솟고 있다니. 서울 같은 대도시는 수치가 150, 제주 산림은 1000, 이곳이 650에 이른다지 않은가. 음이온의 효능은 검증된 바 있다.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심신을 안정시켜 줄 뿐 아니라 불면증을 완화해 주며 식욕을 북돋아 준다. 신 대표는 이 음이온 효능 연구로 체계적 이론을 정립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다. “3분만 가만있어 보세요.” 말하는 대로 서 있었더니,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싸고돈다.

돌에도 근육이 있다. 용 한 마리 길게 누워 꿈틀거린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사신이 자리를 틀고 앉았다. 지금은 잠룡(潛龍)이나 언젠가 여의주를 얻어 지축을 흔들며 날아오르리라. 겉으로 한낱 빌레던 너럭바위가 저 신비를 품고 있었다니, 자연의 조화는 어디까지인가.

1만 평 넘는 광활한 대지에 틀어 앉은 용암류 바윗돌들, 그들이 세상으로 나온 걸 어찌 심상한 일이라 하랴. 인연이다. 한 사람의 창의적 착상으로 땅속에서 태어난 돌과 사람의 절묘한 만남. 커피숍이 있었다. 가을이라 청귤차가 향긋하다. 수염 더부룩한 자연인 신 대표와 작별하며 말했다. “파파빌레를 세상으로 열어놓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