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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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길 수필가
비가 온 뒤라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방학이 되자 서울에서 시각장애아인 외손녀 유진이가 내려왔다. 오랜만에 만난 유진이를 데리고 절물 숲속을 걸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2019년 제주국제관악제의 일환으로 열린 8.15 경축음악회에서 울려 퍼진 코리아 판타지(한국 환상곡)의 감동을 전하자 할아버지, 정말 축하해요하며 나를 끌어안았다. 음악에 조예가 깊고 음감이 예민한 그는 한국 환상곡을 수차례 들어, 내용을 꽤 뚫고 있기에 그 가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코리아 판타지가 제주 밤하늘에 울러 퍼졌다. 연주가 끝나자 야외공연장 스탠드를 꽉 매운 청중들이 모두 일어서서 외치는 환성과 박수소리는 감동의 물결로 오랫동안 이어졌다. 나도 제주연합합창단원으로 무대에 섰으니 그 감격은 오죽하겠는가.
 
안익태 선생은 19631, 제주은행 설립자인 김봉학 행장의 초청으로 제주를 방문하였다. 그 인연으로 안 선생은 당시 제주도 최초의 사설합창단인 탐라합창단을, 지금은 없어진 제일극장무대에서 지휘를 하여 제주도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탐라합창단원이었던 내 아내의 말에 따르면, 안 선생은 지휘하는 무대에서 검지를 입에 대고 하고 눈빛을 발하면, 그의 카리스마에 눌려 단원 모두가 긴장하여 고요의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서귀포 관광극장에서도 공연을 했는데 교통이 열악하여 트럭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3시간 이상 달려야 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트럭위에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이 60년대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그런 와중에도 안덕계곡이나 천지연폭포에서는 모두 내려 푸르른 자연 속을 유유자작 거닐기도 했단다.
 
지금 서재에는 안덕계곡에서 내 아내가 안익태 선생과 함께 거니는 사진이 걸려있다. 이 사진은 본래 아내 소유의 작은 사진을 안익태선생 제30주기추모회 행사시 크게 확대해서 제주문예회관에 전시되었다가 기념으로 넘겨받은 것이다.
안 선생은 제주를 둘러보면서 공기가 맑고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족이 있는 스페인으로 돌아갔지만 얼마 되지 않아 1965년에 운명하셨다. 그리고 1977년에 국립묘지로 이장되어 지난 영욕의 세월을 잊고 영원히 잠들고 있다.
 
코리아 판타지는 1940년 로마에서 처음 연주되어 세계를 돌고 돌아 이제 제주까지 오게 되었다. 피날레에 애국가가 삽입되어 있어 광복절에 부르는 의미가 새롭게 느껴졌다. 비록 안익태 선생이 직접 지휘를 하지는 않았지만 제주국제관악제연합관악단의 연주에 맞춰 제주국제관악제시민연합합창단 350명이 코리아 판타지를 부른 것과, 안 선생이 제주에 남긴 족적은 제주음악사에 기록으로 남아 잊히지 않으리라. 그는 가셨지만 그의 코리아 판타지는 영원하리.
 
유진이와 나는 손을 잡고 다시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고요함이 이어지던 숲길 어디선가 새소리가 가늘게 퍼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귀 기울이던 유진이가 밝은 미소로 속삭였다.
 
! 한국 환상곡이 들려요.”
 
유진이는 앞은 보이지 않지만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울림을 듣고 있나보다. 나는 유진이의 손을 꼬옥 잡고 코리아 판타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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