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잘 버텼다" 도시 직장인 불안·외로움 다룬 '버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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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호흡·판타지 결말…호불호 갈릴 듯
'버티고'
'버티고'

"오늘 하루도 몹시 흔들렸지만 잘 견뎌냈다."

서영(천우희 분)은 고층 건물에 입주한 IT업체 계약직 디자이너다. 사내 최고 인기남 상사이자 이혼남인 진수(유태오)와 비밀 연애 중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서 연락이 뜸하다. 회사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두고 재계약에 대한 부담은 커지고, 어지럼증과 이명 증상도 부쩍 심해졌다. 그 와중에 지방에 사는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와 신세 한탄과 돈 부치라는 이야기만 한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을 때, 창밖 로프에 매달려 유리창을 닦는 관우(정재광)와 눈이 마주친다.

영화 '버티고'에서 서영은 얼핏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직장, 연인, 동료, 심지어 가족까지 어느 한 곳 발붙일 데 없어 부유하는 인물이다. 직장에서는 언제 잘릴지, 연인에게서는 언제 다시 전화가 올지, 비밀 연애는 언제 들통날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그런 답답한 현실과 외로움에 짓눌려 숨이막혀한다.

서영이 느끼는 감정은 도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낄법한 근원적인 불안감을 대변하는 듯하다. 영화는 그런 지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구원자'를 내세운다. 외줄에 위태롭게 매달려 서영 곁을 맴도는 또 다른 외로운 영혼 관우가 바로 그 '수호천사'.

서영의 감정을 오롯이 따라가는 이 영화는 상당 부분 천우희의 연기력에 기댄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흔들리는 눈빛, 근육의 미세한 떨림을 담는다. 풍랑, 장마, 맑음 등 변화무쌍한 날씨 역시 서영의 심리를 대신 말해준다. 사무실을 환히 밝히는 수많은 형광등과 아찔한 높이의 빌딩 역시 불안을 극대화하는 요소다.

호흡은 상당히 느린 편이다. 그런 만큼 누군가에는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버텨야' 하는 시간일 수 있다.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지만 지나친 자기연민에 빠진 서영을 지켜보는 일 역시 편치만은 않다. 서영의 대사처럼 진공 속에 갇힌 듯한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는 서영의 감정 변화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진수의 갑작스러운 퇴사, 직장 상사의 그릇된 행동 같은 돌발 요소를 넣었지만, 작위적이고 도식적이란 인상을 지을 수 없다. 판타지 같은 결말 역시 호불호가 갈릴 법하다.

'삼거리 극장' '러브픽션' 등을 연출한 전계수 감독은 "18년 전 일본의 42층 사무실에서 직장 생활을 할 당시 느낀 외로운 감정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면서 "서영이 갇혀있던 프레임 바깥의 세상으로 한 발 내디딜 수 있게 응원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17일 개봉.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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