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문화지식체계와 문화감수성
제주 문화지식체계와 문화감수성
  • 제주신보
  • 승인 2019.10.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혜경,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논설위원

요새 필자는 제주도내의 마을조사를 하면서 주민생애사를 기록하고 있다. 70대 중·후반부터 90대까지의 어르신들을 만나 그들의 생애 이야기를 듣고 텍스트화하는 작업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흥미롭다. 어르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백년의 제주사 및 한국사가 단 시간 안에 서사적으로 그려진다. 대부분 1930년대 이후에 태어나신 분들이라 그분들의 부모와 조부모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까지 듣고 있자면 필자가 마치 대한제국 시기나 해방 전 후 시기로 들어간 것처럼 생생하게 느낌이 전달될 때가 많다.

어르신들은 본인들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정치적 사건들과 경제적 상황들, 생활문화 등에 대하여 그들의 뇌리에 강인하게 남아있던 기억들을 오롯이 드러내신다. 듣고 있자면 개인의 경험과 기억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사회적인 것을 느낄 수 있다. 경험은 같은 세대와 다음 세대에게로 지속적으로 환류되고 공유되면서 집단 기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고도의 공동체 문화지식체계로 전환되어 축적되어온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때때로 자연유산자원을 비롯하여 역사문화유산자원, 생활문화유산자원 등으로 분류될 수 있는 문화지식체계로 드러내기도 한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오랜 생업 활동과 연결되어 있는 풍수자원 및 지명자원과 같은 자연유산자원을 비롯하여 어르신들이 수행한 기록자원과 건축자원 등과 같은 역사문화유산자원들과 생활문화유산자원으로 분류되는 의례자원, 민구자원, 사진자원, 경험자원, 오감자원 등 수많은 자원들이 제주의 문화지식체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목도할 수 있다.

특별히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제주 사람들에게는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 체계화된 오감자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바람의 종류에 따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며, 물과 땅의 성질에 따라 그 사용 용도를 구분하고 호칭을 달리 한다. 같은 논이라도 ‘짐퍽’과 ‘흐렁논’이 다른 것은 땅과 물의 관계에 대하여 고도로 체계화된 지식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제주의 풍경 한 자락을 담당하고 있는 돌담이나 밭담의 자원인 현무암조차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산돌과 바닷돌을 구분할 수 있으며, 한라산의 경관이 어느 지점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지 미학적 지식까지 체화되어 있다.

이런 제주의 문화지식체계에 대해 우리의 문화적 감수성은 미약하기 이를 데 없다. 새로운 사회변화에 대한 감수성은 높아지는 반면 어쩌면 우리의 정체성이 녹아있는 문화지식체계에 대한 감수성 발현은 너무 더디기만 하다. 그러는 사이 제주의 문화지식체계를 이루는 옛 지식들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소멸되고 있다.

어르신들은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들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시대 경험을 후세대와 나누고자 하시지만, 여의치가 않다. 자녀와의 거주지가 다르고, 후세대와의 소통 방식의 차이로 의도하지 않은 단절 등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상 후세대가 문화적 기억을 통하여 우리의 문화지식체계를 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문화적 감수성을 증진시켜 제주의 문화지식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마을의 한 노인이 사라지는 것은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현재 제주 어르신들의 구술생애사를 정리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