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릇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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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지난여름도 무척 더웠다. 가마솥더위란 말이 나왔다. 가마솥은 사람이 처할 곳이 못되니 과장기법의 극치다. 말 같지 않아도 수사에 공감했다. 이글거리는 햇볕에 델 것처럼 뜨거웠으니까 실감 난다고 동의한 것이다. 처서 뒤엔 아직도 여름 뒷자락이냐고 구시렁댔다.

우리는 질서란 말을 곧잘 망각한다. 사계절은 한반도에 내려준 신의 선물이다. 해마다 오가는 계절의 변화는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다. 질서는 엄연해 그 속에서 삶의 리듬을 찾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커다란 그것의 틀 속으로 들어가 둥지를 튼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기도 하다.

자연처럼 아름답고 역동적인 질서의 세계는 없다. 누가 붙들거나 끌어당기거나 내쫓거나 떼밀지 않아도 올 때가 되면 오고 왔다 때가 되면 간다. 기어이 또 오기 위해 간다. 9월이 오면서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 냄새가 달라지더니, 10월 들어 선풍기를 물리고 창을 닫게 했다. 읍내라 풀벌레 소리에 새벽잠을 깼다. 리허설도 없이 어둑새벽을 깨우는 화음이 여름의 끝자락을 멀찌감치 밀어낸 지 오래다.

가을이다. 추억의 갈피를 들썩이며 들려온다. 오르간도 없던 흙바닥 가교사에서 여선생님이 가르쳐주었던 그 노래. ‘아, 가을인가. 아아아아아 가을인가 봐. 물통에 떨어진 버들잎 보고 물 긷는 아가씨 고개 숙이지.’ 그 가을이 수십 번 시간의 굽잇길을 치대며 와 마침내 눈앞에 당도했다. 가을의 들머리를 불러 줬던 그 선생님 생존해 계실까. 세월은 해묵어도 묻혔던 가을은 아득히 산을 넘고 들판을 지나 마을로 진입한다. 익숙한 길이라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다.

우리 그동안 잘 견뎌냈다. 비단 더위뿐이랴. 무턱대고 나아가는 길을 막아서던 시대의 혼돈, 일을 훼방 놓던 물리적 힘과 꿈을 흔들던 수작…. 그래도 웅숭깊은 추억의 샘물을 길어 올리면서 고단했던 그 시절의 현기증을 덜어냈다. 알음알음 다윗의 반지에 새긴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대로, ‘이 또한 지나갈 것’을 종교처럼 믿었다. 그렇게 줄줄 흘러내리던 여름의 땀을 훔쳐 가며 오늘에 이르렀다. 시간은 시간 속에 난 생채기를 어루만지는 신통한 약손인 걸 안 것도 그렇게 터득한 학습 효과였다.

이제 가을이 한창 깊어 간다. 먼 산 나무들이 잎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단풍의 계절이다. 산이마에 어른거리는 빛의 스펙트럼이 잔잔한 파장으로 일렁이는 게 언뜻언뜻 눈에 들어온다. 초록이 지쳐 쇠락의 길목에 나앉는 모습이다. 소슬바람에 몇 차례 무서리를 얹으면 초록이 노릇노릇해질 것이다. 붉게 물든 것은 단풍을 위한 마지막 붓질, 그 뒤는 낙엽, 단풍은 한꺼번에 와락 물들지 않는다. 초록에서 노릇노릇하다 불그스름하게 제 차례를 기다린다. 종당에 활활 들불처럼 타올라 만산홍엽, 그래서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다.

노릇노릇은 초가을 빛이다. 서두르지 않고 붉게 물들 무렵의 어느 지점, 단풍으로 가는 낌새의 빛깔이다. 붉게 물들려 수줍어 은근하다. 노르스름하게 막 칠한 빛깔의 언어다. 사람이라면 초로(初老)라 먼 데 눈길을 주며 마음 설렐 그 빛깔, 노릇노릇은 단풍 들면 아플 걸 지레 아는 영묘한 색깔이다.

가을은 생장(生長)을 접고 거둬 갈무리하는 수장(收藏)의 계절이다. 가을이 깊어 간다. 스산하다 푸념하지 마라. 산의 나뭇잎들처럼 노릇노릇 물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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