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시대 북두칠성 형태로 일곱 곳에 칠성을 세워 성소로
왕의 관직 명칭은 성주(星主)로, 관부는 성주청으로 기록
이 가을, 어떤 간절함이 이뤄지길 바라는지요. 마음은 벌써 어느 별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한 삶의 여정을 위해 종종 두 손 모으게 된다. 일궈야 할 오르막이 가파를수록 어떤 별 하나와 더 가까워지는 까닭이다.
강문규 선생님은 별과 칠성대, 산지천에 관해 들려주신다. ‘일곱 개의 별과 달을 품은 탐라왕국’의 저자이기도 하다. ‘탐라는 별나라였다’는 허구가 아닌 탐라의 본질적 핵심으로 기록, 사진, 지도 등으로 전해진다. 탐라는 북두칠성 형태로 일곱 곳에 칠성을 세워 일도 이도 삼도를 경계로 삼고, 칠성신앙의 성소로써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다. 왕의 관직 명칭은 별나라의 주인인 성주, 도성은 칠성도대촌, 관부는 성주청으로 불린다. 일곱 개의 별과 달을 품은 탐라왕국의 일도 이도 삼도의 관부인 관덕정 자리는 월대로 달을, 칠성대는 별을 상징한다. 1735년 제주목사 김정이 남긴 시다. “옛 도읍의 유적 날로 황량한데 근처에 사는 사람들 모두 헐어 무너뜨렸네. 분주히 평평한 둑을 쌓아 이치 밝히니 성안 가득 별과 달 다시 빛을 발하네.” 1926년 순종임금이 돌아가시자 제주시민들이 만곡제를 지낸 사진이 남아있듯 칠성대가 온전히 보전된다.
산지천은 1990년대 4층 건물로 450m를 덮고 있다가 건물 균열이 학회 보고돼 ‘산지천을 물 흐르는 하천으로 복원하자’는 13번의 기사와 ‘홍예교 다리 아래 산지천이 흐르고 언젠가 우리….’란 26번째 기사를 낸다. 그 후 5년 뒤에 헐리자 똥물 방사로 서부두와 연안까지 오염됐으나 복원의 빠른 진척에 ‘산지천에 은어가 돌아왔다’는 기사로 꿈을 이룬다.
‘끝내 못 돌아온 내 누님의 별 하나’ 김정희 낭송가가 오승철의 시조 ‘판’을 낭송한다.
1//칠흑의 하늘에겐들 허기가 왜 없겠는가
2//허기가 왜 없겠는가 칠흑의 가슴에겐들/제주시 칠성로 돌아 별자리로 걸린 국자
3//국자도 나무 국자 손금처럼 금이 가도/별 방향 가늠해야 섰다 끗발 난다면서/밤새껏 북극성 따라 고쳐 앉는 자리하며
4//따져보면, 밀항이리/벽랑국 세 공주도/또 그렇게 세 공주와 눈 맞춘 탐라 사내의 첫날밤도/생 한번 걸어도 좋을/판을 벌인 것이니
5//팔자 사나운 게/사람만의 일이겠나/제주와 일본 사이 일본과 제주 사이 ‘죽을 운 속에 살 운 있다’는 밀항의 바다, 현해탄 그 허기의 바다 ‘4·3’이며, ‘재팬드림’, 끝내 못 돌아온 내 누님의 별 하나/엎어적 갈라적 하며/칠성 끌고 가는 밤
-오승철, ‘판’ 전문
이관홍님의 ‘내가 천사의 말 한다 해도’, ‘I want you’의 플루트 연주다. 천사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가사처럼 사랑의 눈길 없이 오늘이 있을까.
기피하던 공간이 찾고픈 문화광장으로 변모해 고행 끝에 산지천이 유유히 흐른다.
“네 귀 반듯 관덕정/별이 송송 칠성골/팽 벌럿져 산지골/산룽낫져 검정 먹골”의 구비전승은 탐라가 별나라인 이유다.
사회=정민자 시낭송=김정희 무용=한정희 플루트=이관홍 성악=윤경희·황경수 리코더=오현석 음향=홍정철 반주=김정숙 영상=김성수 사진=채명섭 글=고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