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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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냄비는 많이 써 온 세간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솥보다 운두가 낮고 뚜껑과 손잡이가 달려 있다. 가볍고 열전도가 빨라 솥 대신 구실을 톡톡히 한다. 찌개나 라면을 끓이는 데 따를 게 없다. 편리함과 다양한 사용 욕구를 충족시킨다. 특수재질로 투명 유리나 스테인리스의 것이 나온 지도 오래다.

냄비 하면 떠오르는 게 양은냄비다. 긴 세월 한국의 주부들 손을 타 왔다. 쉬 찌그러지지만 외려 그 낡아 가는 모습이 정겹기까지 하다. 손때 묻으면 정이 든다.

한데 양은냄비는 별나다. 녀석처럼 빨리 달아오르는 그릇이 없다. 삽시에 빨리 뜨거워지고 그만큼 빠르게 식는 불같은 성미를 지니고 있다.

요즘 한국을 풍자적으로 일컫던 ‘냄비문화’란 말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얼마 전 일본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를 선언했다. 일제 강제 징용 보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다. 우리 대통령의 철회와 협의 요구에도 그런 일은 절대 없다 쇠심줄 고집이다. 가능한 외교 채널이 양국 사이를 다시 트고자 작동해 옴에도 일본은 시종 기고만장 고압적이다. 한일 관계가 전에 없이 악화돼 장기화할 기류가 감지된다.

민중의 저항이 일어났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일어선 것으로,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됐다. ‘가지 않습니다’와 ‘사지 않습니다’. 일본에 가지도 말고 그들 제품을 사지도 않는다는 것. 이른바 ‘보이콧 재팬(일본 불매)’은 결연했다. 한국인의 의기를 보여준 것이라 바라보는 시선들이 뜨거웠다. 한국인다운 선택이고 한국인다운 실천운동이란 생각에 뿌듯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매장 가기를 꺼렸다. 놀랍게도 유니클로가 문을 닫는 그럴싸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7월의 일이다. 한데 이게 웬 말인가. 들불처럼 타오를 거라던 불매운동이 느슨해지고 있다니. 성난 민심이 일어나면서 불매운동 표적 제1호로 무너지던 유니클로가 북적이고 있다지 않은가. 가는귀먹었다고 귀를 의심했다. 1만원 대 유니클로 후리스들이 품절 행진을 이어 간다는 소식이다. 유니클로 소비자뿐 아니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면서 급기야 매출이 오르고 있다 한다.

때마침 유니클로 창업자가 극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일본이 한국을 적대시하는 게 이상하다. 한국에 반감을 갖게 된 건 일본인이 열등해졌다는 증거다.” 한국의 본래 민심을 이해한다는 발언이자, 한국 소비자가 일본 아베 정부에 화가 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한소리를 뱉어댄 것이다. 거기다 “일본이 한국과 싸우겠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면서, “일본인도 열화(劣化)했다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길 사람 속을 어찌 알까. 말의 진의(眞意)를 짚는 건 그렇지만, 자기네 제품을 안 산다고 나선 한국인을 이해한다며 달래려 한 의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쨌든 유니클로에 다시 고객들이 들끓는다는 것이다. 유니클로 일부 의류가 품절됐다며 일본 누리꾼들이 조롱 섞인 비난을 해댄다. “한국인들이 굴복했다”, “역시 한국인들은 냄비다”라고.

양은냄비는 피막이 벗겨져 알루미늄이 용출되고, 그것은 인체에 해로운데 특히 치매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니 겁이 난다. ‘안 산다’가 고작 석 달로 끝물이라니. 일본이 한국의 냄비문화를 비웃는 게 께름칙하다. “그것 봐, 금세 식는다 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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