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은 남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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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른 이후 과소비로 흥청거리던 우리 사회를 보고 외국 언론이 아프게 꼬집은 말이다. 샴페인은 톡 쏘는 탄산 성분으로 맛도 일품이지만, 뚜껑을 열었을 때 ‘뻥’하는 소리와 함께 세차게 솟구치는 거품으로 축하주로 안성맞춤이다.

그때만 해도 한국 경제는 순항했다. 1995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으며, 1996년에 세계에서 29번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합류했다. 특히 OECD 가입은 모두에게 꿈에 그리던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환상마저 심어줬다.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 등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란 수식어도 붙었다.

하지만 1997년 말로 접어들자, 상황이 돌변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누구는 실업자가 되고, 또 누구는 노숙자로 전락했다. 이때 다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탓이라는 말이 회자했다.

▲정부가 지난 25일 농업 분야의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했다. 미국이 OECD 가입국과 G20 회원국, 세계은행 고소득 국가, 세계 상품교역의 0.5% 이상 차지하는 국가 등에 하나라도 해당하면 개도국이 아니라고 하는 상황에서 ‘4개 타이틀’을 모두 가진 이상 더는 “봐 달라”라고 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WTO 개도국은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입관세를 매길 수 있다. 또 수입이 급증하면 추가 관세를 부과해 수입 물량을 제한하는 긴급 수입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다. 개도국 포기는 향후 WTO 농업 협상에서 이 같은 특혜를 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1996년 OECD 가입 때에는 농업과 기후변화 분야 외에는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공산품을 포함한 대부분 품목은 이때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았다.

이제 농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관세를 방패 삼아 수입을 제한할 수 없고, 농가의 큰 버팀목이었던 소득 보전을 위한 각종 보조금 한도도 크게 줄어든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해야 할 판이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지도자 윈스턴 처칠의 샴페인 사랑은 대단하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패배했을 때도 샴페인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겼을 때는 축하를 하기 위해서, 졌을 때는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다.

그간 샴페인을 많이 소비했다. 농심을 달래줄 몫은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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