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녀반수 김만덕과 추사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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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종, 서귀포지사장 겸 논설위원

지난주는 김만덕의 나눔 정신을 기리는 한 주였다. 전 재산을 털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휼한 선생의 숭고한 뜻을 받들기 위해 만덕제와 나눔 큰 잔치, 김만덕 유적 탐방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이번 주말에는 추사 김정희를 추모하고 그의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추사문화예술제가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추사유배지에서 열린다. 추사 유배길 걷기, 유배 행렬 재현, 추사체 퍼포먼스, 전국휘호대회 등의 행사가 마련됐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한 공로로 정조로부터 ‘의녀반수’의 벼슬을 하사 받은 조선시대 최고의 여성 CEO 김만덕, 그리고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서예가로 제주 유배 시절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 두 위대한 인물은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제주를 통해 역사적 인연을 맺는다. 추사는 제주 유배 당시 편액 두 점을 남겼는데 하나는 대정향교의 현판 ‘의문당(疑問堂)’이고, 다른 하나는 김만덕을 추모하며 쓴 ‘은광연세(恩光衍世)’다.

의문당은 ‘의심스러운 것을 묻는 집’이라는 뜻으로 학문을 함에 있어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정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은광연세는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진다’는 뜻으로 김만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칭송하며 그의 조카에게 써 준 것이다.

▲‘귤밭 깊은 숲 속에 태어난 여자의 몸/ 의기도 드높아 주린 백성 없었네/ 벼슬은 줄 수 없어 소원을 물으니/ 일만이천봉 금강산 보고 싶다네.’ 북학파의 거두 초정 박제가가 김만덕의 선행을 찬양하며 쓴 시다.

정조 때 영의정까지 지냈던 명재상 채제공은 ‘만덕전’을 집필, 그의 정신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리려고 했다.

중국 유학자들도 ‘여러 학문에 능통한 조선 최고의 학자’라는 뜻의 ‘해동제일통유(海東第一通儒)’라고 칭했던 추사 김정희. 그는 9년 동안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문인화의 최고봉’이라고 평가 받는 최고 걸작 ‘세한도’를 후세에 남겼다.

▲김만덕과 추사는 ‘제주’라는 지리적 공통점이 있지만 극히 짧은 시간도 함께하지 못했다.

김만덕은 1812년 생을 하직했고, 추사는 1840년에 제주에 유배 왔기에 28년이라는 세월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 제주에서 생전에 만났더라면 역사의 울림이 더 크지 않았을까 가정도 해본다.

깊어가는 가을, 김만덕과 추사의 영혼과 향기가 제주에 가득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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