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빗속의 想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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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수 수필가

이른 아침인데도 눈이 번쩍 뜨였다. , , , 빗소리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산행 약속은 틀렸구나.’ 생각하며 커튼 밖의 세상을 확인한다. 제법 굵은 물방울이 처마를 타고 내려 바닥을 적시고 있다. 비가 올 거라는 예보는 있었지만 가끔은 틀릴 때도 있어서 행여나 하고 잡아둔 약속이었다. 가을이 깊어졌는데도 기압골에 의한 안개나 강수 현상이 자주 나타나면서 당황스럽게 한다.

지난여름은 무척 더웠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경험하는 폭염이라고 기상청이 발표를 하였었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며칠간은 상쾌한 날씨가 계속되는 듯 했는데 뜻하지 않은 불청객 가을장마가 우리들의 발을 묶어 놓았었다. 그 다음으로 몰아닥친 가을 태풍을 두 차례나 치르면서 기상이변에 대한 두려움과 오래 전의 사라호 태풍에 대한 아픈 기억마저 되살아나곤 했었다.

반갑지 않은 비손님이지만 마중을 잘해야 행패를 부리지 않고 넘어간다. 우산을 들고 하수구 막힘이 없는지 찾아보고 낙엽을 긁어 멀찌감치 버린다. 잠시의 움직임인데도 옷이 젖는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줄기차게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다가 빈 빨랫줄에 시선이 멎었다.

오늘은 비 덕택에 빨랫줄은 모처럼의 휴식에 들어갔다. 등줄기를 휘감는 빨래의 무게에서도, 설렁거리는 바람의 조롱에서도 해방이 되었다. 이웃집 옥상에 걸린 빨랫줄도 방학을 맞아 텅 빈 교실처럼 한산하다. 몇 개의 빨래집게만이 빈 줄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마을에 가끔 들르는 엿장수, 방물장수들은 빨랫줄에 걸린 빨래를 보면서 그 집에 누가 사는지를 단박에 알아맞히곤 하였다. 걸려 있는 빨래의 재질과 양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셈법을 발휘했음이다.

요즘은 빨랫줄이 빨래건조기에 밀려나 있지만 예전에는 집 마당 풍경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처럼 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집 안채의 기둥과 맞은 편 울타리 옆의 멀구슬나무 굵은 가지에는 긴 빨랫줄이 언제나 매어져 있었다. 그 위에는 작업복이 항상 널려 있었지만 가끔은 버거운 이불이 걸려있기도 했었다. 긴 줄의 중간쯤에 삐딱하게 기대서 있는 바지랑대도 쓰러질 듯 조금 불안해 보이지만 마땅히 제 구실을 치른다.

바지랑대 같은 사람, 그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필요한 사람이다. 왼쪽도 아니고 오른쪽도 아닌. 가운데에서 전체를 떠받들고 균형을 잡아주는 존재이다. 그러다가 가끔은 없어도 괜찮은. 바지랑대는 빨랫줄을 떠받고 있을 때만 서있을 수 있으니 어쩌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는 사이이다. 줄 위에 걸쳐놓은 빨래들은 마르면서 가운데로 모이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줄은 양 끝이 단단히 묶여있음으로써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지만 줄에 걸쳐진 빨래의 움직임은 바지랑대가 있어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살아오면서 빨랫줄 역할보다는 바지랑대 역할을 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몇 번은 있었다. 여럿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반되는 의견이나 이론을 가지고 팽팽하게 대립할 때가 있다. 이때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도록 조정하는 중용의 지혜를 발휘하고는 슬그머니 뒷전으로 물러서는 멋을 아는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다.

최근에 나는 자원하여 우리 집 빨래 담당자가 되었다.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아내를 돕는다는 생각과 내 할 일을 한 가지씩 늘려보자는 계산이 작동을 한 셈이다.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세재를 적당히 풀어 넣은 다음에 스위치 몇 개만 눌러준다. 한 시간 남짓 기다리면 빨래가 다 되었다는 메시지가 들려온다. 얼른 일어나서 빨래를 넌다. 가끔은 이웃집 아주머니가 곁눈질로 바라보지만 아랑곳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른 빨래를 개어서 보관하는 일까지도 확실히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방이 훤해지고 비도 훨씬 가늘어졌다. 베란다 옆 모퉁이에 놓인 화분들 사이로 길게 돋아난 자귀나무 잎이 한층 더 싱싱해 보인다. 그 작고 동글동글한 이파리가 빗물을 받았다가 아래로 기울인다.

자귀나무는 초여름에 꽃을 피운다. 부채를 쫙 펴면 한순간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문양을 닮은 화사한 꽃술들이 분홍색 바람을 일으키는 듯했었다. 밤이면 잎이 오므라들어 서로를 포옹한다고 하여 합환수(合歡樹)로 불리며, 정원에 심어놓으면 부부금실이 좋아진다는 속설도 있다.

이제 긴 동면의 시간을 준비하려는 저 자귀나무가 어떻게 이곳에 이주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어느 새가 어느 산에서 씨앗 한 알을 품어 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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