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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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신보
  • 승인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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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종종 자료 조사를 위해 할머니들을 만나는데 한 할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서 할 일은 다 했으니 저승사자가 언제든 오라고 하면 갈 준비가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식들 굶기지 않고 남만큼 가르쳐서 사람 노릇 할 수 있게 키워내는 것만 생각하며 몸 아끼지 않고 밤낮으로 삯바느질하며 살았다. 지금은 자식들이 다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살고 있으니 더는 욕심 없노라 하셨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인 호상 옷까지 만들어 두었으니 할 일 다 한 셈이다. 할머니는 이력서 마지막 줄에 자식들을 위해 호상 옷 만들며 건강하게 명을 다해 잘 살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낸 것으로 끝마치고 있다.

누구나 크든 작든 삶에 목표를 정하고 부단히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때로는 목표와는 다른 방향으로 갈 때도 있지만 목표가 분명하다면 돌아서라도 그 방향으로 돌이키게 된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게 되는데 할머니를 만나고 나서 이력서 마지막 한 줄은 무엇이라 적을까? 나도 세상에서 다 했다고 할 일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화두처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취업을 앞둔 수험생들은 한 줄이라도 이력서에 더 적어 놓으려고 스팩 쌓기에 여념이 없다. 아마도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이 될 수 있는 곳을 선택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이력서의 빈칸을 채우며 이력서에 전()자가 더 많아지고 있는 지금 미련 없이 좋을 만큼 살아왔는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혹 수단이 목표가 되었는데 더는 가질 수 없어서 허탈함과 공허함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아직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조바심과 절망하며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 욕심으로 충분히 행복해도 좋을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안타깝게 시간만 보내는 어리석음을 이제는 벗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고운 가을 단풍도 때가 되면 떨어질 날이 오듯이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오고 있다. 그 기간이 많이 남은 사람도 있고 금방 닥칠 사람도 있을 뿐 누구에게나 똑같이 오는 것은 사실이다. 많이 남은 사람은 그만큼 열정을 쏟으며 살아갈 시간을 가졌으니 그 열정이 목표를 향해 잘 가고 있는지 깊어가는 가을에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기록할 이력서의 한 줄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마침표가 될 한 줄이다. 각자 무엇이라 적을 것인가?

마침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목표를 향해 남은 시간 열정을 쏟으며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