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맺힌 죽음의 흔적, 조가비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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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전 제주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제주도는 화산에 의한 화산밭이다. 제주도는 화산활동의 신비를 품고 있는 지질역사교과서이다. 해저세계에서 화산활동이 용트림하기 시작한 것은 약 120만년 전이다. 이때부터 시뻘건 불덩이가 제주도의 탄생을 재촉했다. 25,000년 전까지 수십 차례 한라산 주변에 기생 화산이 활동하여 오름들이 탄생했다.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구멍도 오묘한 의미를 담고있다. 산굼부리는 산에 생긴 화산체 분화구로 한라산 기슭에 난 구멍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마그마 물질이 분출폭발하면서 지하에는 공간이 생기게 되어 지반이 가라앉게 된 것이다. 이 결과로 탄생한 함몰분화구(pit crater)가 바로 산굼부리이다.

이 구멍은 생명체의 보고이다. 이곳은 식생 분포가 매우 다양하여 생태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천고마비의 계절에 산굼부리를 품으면, 한라산을 병풍삼아 분화구 주변을 둘러싼 넓은 억새 군락지가 호흡하는 장관을 맛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오름 형태는 다랑쉬 오름과 같은 모양이다. 이러한 오름을 스코리아 콘(scoria cone)’이라고 한다. 대부분 한 번의 분화로 만들어지는데 스코리아라는 암석이 퇴적되어 있다.

스코리아는 제주방언으로 송이(가벼운 돌)’라고 부르는 구멍이 많이 뚫려있는 암석으로 화분, 화장품 원료 등에 많이 사용된다. 이처럼 오름의 심층부에서는 인간세상을 밝게 만들기 위해 과학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산굼부리는 화산활동에 의한 구멍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지만, 조개껍질에 난 구멍은 한 맺힌 죽음의 흔적이다. 조개목걸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추억이 담긴 아름다운 선물이지만, 그 구멍에는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숨어 있다.

이 조개껍질 구멍은 생물학 용어로 천공이라하며, 조개가 자신의 사촌뻘인 육식성 고둥류인 구슬우렁이(moon shell)에게 희생 당한 흔적이다. 조개 자신은 물에 있는 플랑크톤이나 유기물을 아가미로 걸러 먹는다.

천연진주는 연체 조개류가 만드는 것으로 흔히 조개의 눈물이라 부른다. 진주알을 잉태.생성시키기는 작업이 조개에게는 눈물겁도록 치열한 작업인 것이다. 최후에 이들은 자신의 껍데기에 천공이라는 죽음의 흔적을 안고 해안가의 일원이 된다.

윤동주는 데굴데굴 굴리며 놀다/짝 잃은 조개껍데기/한 짝을 그리워하네/아롱아롱 조개껍데기/나처럼 그리워하네/물소리 바닷물 소리.’라고 애틋하게 읊었다. 조개의 아픈 일생이 그리움으로 승화된 것 같다.

죽음의 구멍이 생기는 과정은 심오한 과학이다. 조개는 적이 침입하면 두 껍데기를 굳게 닫아버린다. 그렇지만 구슬우렁이가 조개에 접근하여 입안의 치설로 껍데기를 갉아내기 시작한다. 보통 여덟 시간 정도 계속 갉으면 조개껍데기에 구멍이 뚫린다.

또한 구슬우렁이가 30분 정도 염산을 분비하면 석회질로 된 폐각이 흐물흐물하게 녹기도 한다. 껍데기에 구멍을 내기 위해 물리적화학적 방법이 총동원된 것이다. 이것은 생사의 기로에서 처절한 투쟁이 전개되는 과정이다.

구멍이 뚫리면 구슬우렁이는 침샘의 독물을 조개 몸 안에 분비한다. 조개는 나른하게 마취되면서 결국 폐각근(閉殼筋)이 힘을 잃고, 두 장의 껍데기가 스르르 맥없이 열린다. 이때 구슬우렁이는 게걸스럽게 여린 조갯살을 뜯어먹는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조가비 구멍이고, 한 맺힌 죽음의 구멍이다. 그후껍데기들은 바닷물에 쓸리고 햇볕에 바래지면서 해변를 지키는 추억의 꽃으로 탈바꿈한다. 이것은 동식물 생태계와 화학분야의 한 단면이다. 이처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구멍에는 다양한 과학적 의미가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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