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싶지만
모르고 싶지만
  • 제주신보
  • 승인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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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난 30평 남짓의 집에 온종일 혼자 있어도 힘들지 않다. 그래도 식사를 할 때면 밖에 나가 사먹곤 하니 말이 혼자이지 혼자는 아니다.

화북에서 살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방학 동안에, 새벽이면 일어나 정처 없이 이리저리 뛰다가 돌아와 씻고 밥을 먹고 책상에 앉아 있다가, 점심때가 되면 나가 밥을 사 먹고 들어와 또 잠깐 책상에 앉았다가, 4~5시 경이면 수영복과 수경 등을 챙겨 바다에 나아가 물고기를 따라 노닐다가, 물고기가 멀리 바다 속 깊은 곳으로 가면 “잘 가라”하고 헤어져, 또 다른 물고기를 찾아 돌아다니곤 하였다. 바다 속도 땅에서와 같이, 어느 곳은 낮은 산과 같고, 어느 곳은 좁은 골짜기와 같다는 생각을 하며 물고기와 더불어 시간을 보내다, 집에 들어와 씻고, 저녁을 먹은 후, 때로는 책상에 앉거나 때로는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잠이 오면 잠들어, 다시 다음 날을 맞곤 했다. 누군가 내가 하는 꼴을 보고 “신선놀음 하냐?”고 한다.

어떤 것에도 누구에게도 관심 없이,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세월을 낚는 좋은 방법이다.

나라에는 나라님이 있으나, 공정하고 정의롭다면, 있어도 있는지 몰라, 저마다 행복할 것이요, 각 기관에는 책임자가 있으나, 정해진 규정에 따라 모두에게 공평하다면, 있어도 있는지 몰라 저마다 만족스러울 터인데, 이것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먼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날마다 화를 부른다.

지구상에 자기의 수명을 끝까지 다하는 동물은 인간뿐일 것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뭇 동물들은 많은 경우 그보다 먹이사슬의 위에 있는 포식자에게 언제 어느 때 잡혀 먹힐지 모르며 살고 있으니, 매순간 긴장할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인간은 지구상 최고의 포식자인데, 인간조차도 동족의 또 다른 인간에게 잡혀 먹힐까 하루하루를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가?

자기만 잘하면 될 것을, 남이 못되어야 즐거운 것이 인간의 속성인가? 실력 없는 자가 온갖 속임수와 선동으로 권력을 잡아, 도리어 훌륭한 분을 통제하려 든다.

야생에 사는 꿩은 먹이를 찾아 헤매어야 먹을 수 있는 반면, 우리 안에 갇힌 닭은 때가 되면 배불리 먹고 마실 수 있지만, 야생의 꿩은 결코 우리 속의 닭이 되기를 원치 않는 것과 같이, 사람도 배는 부르지만 우리에 갇힌 닭이나 개돼지와 같이 되기보다는 비록 배고프더라도 마음껏 뇌까릴 수 있는 사람다운 사람이기를 원한다.

아주 좁은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거동하고, 굳이 명예 따위에 마음을 두지 않으며, 나의 말을 들어주면 나아가고,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 아무 것도 의도하지 않고 살려고 하나, 달라도 너무 다른 생각을 강요하며, 배부른 개 돼지로 만들고자 하니, 생각 없이 그저 지내기가 힘들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에서 사는 것과 같아, 평온하고 안온한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다면 굳이 자신이 물고기인지 몰라도 행복하다. 그러나 어쩌다 어부에게 잡히거나 모래톱에 내팽개쳐질 때면 살려고 아등바등 거리다 비로소 스스로 물고기인 것을 인식하고 어서 빨리 물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돌아갈 수 없다.

안으로는 음흉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인의를 베푸는 양 꾸민 것에 현혹되어, 저들의 덫에 걸려 저들의 개 돼지로 전락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어찌 해야 이 우리를 떠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