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들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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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칼럼니스트

해질녘이면 하늘에 맞닿은 빌딩들의 노을빛 광채가 도시를 압도한다. 문명의 광휘다. 내 삶 주변을 수놓던 자연의 서정적 운치는 도시 문명에 치여 우리 삶 저편으로 밀려나버렸다.

노을빛으로 올망졸망 익어가는 박들을 이고선 초가집들이 이 동네 골목에 점점이 얼려있었는데 이제는 눈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돌담골목길, 원두막, 장독대, 팽나무그늘을 지키던 할아버지·할머니 팽상들,…. 한참 후에 생긴 것들이지만 라디오 수리점과 빨간 우체통, 공중전화 부스…. 이것들마저도 이제는 먼 옛날의 기억일 따름이다. 그 기억마저도 머잖아 고전소설이나 들춰야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로 묻혀버릴 것이다. 우리의 전통이나 시대정신까지도 함께 떠밀려 사라져버린다.

이용한도 그의 저서 ‘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2002)’에서 “그리운 것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서서히 그 흔적을 지워 가는 것.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겠지만, 언젠가는 그 수명을 다하고야 말 것. 소멸을 전제로 한 존재다. 그러므로 아쉬운 것은 곧 안타까운 것”이라 했다.

모든 것들이 문명의 위세에 떠밀리면서 우리의 내면 켜켜이 스며있던 애틋하고 야릇한 감정도 메말라버렸다. 가슴 두근거리며 편지를 쓰고, 종종 걸음으로 우체통을 찾던 일, 수없이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고백하던 사랑의 밀어들도 문명의 기기들이 앗아가 버렸다.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편지를 대신하고, 사랑의 고백마저도 손가락 터치로 망설임 없이 해치워버리는 맹랑한 시대다. 이제는 손발이 해야 할 일도, 마음의 짐도 문명의 기기에 의탁해야 할 판이다. 몸으로 즐기던 노년의 소일거리마저 지워버린 매정한 시대. 커피 잔 들고 음악 감상이나 하고, 핸드폰 두드리며 게임이나 채팅을 즐기는 걸 진정한 삶으로 여기며 살아야하는 세상이다. 땀 흘리며 손발을 부려 뭔가를 이뤄내야 사는 맛을 느끼던 지난 세대의 삶은 이제 철지난 삶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그런 구닥다리 삶의 정서는 우리의 내면에 여전히 남아 흐른다. 옛것들의 향수를 못 잊어하고, 그런 삶의 모습과 풍물을 그리워한다. 디지털 문명의 스마트한 도시를 떠나 아날로그 방식의 투박한 환경에서 탈문명의 풍속에 젖어보고 싶어 한다. 인간의 욕망이 닿지 않은 본디 자연과 옛 풍속들은 눈요깃거리이기보다는 오히려 설렘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문명의 효율성에 밀려 서서히 사라지고 있지만 그것들의 존재의 흔적은 우리의 욕망 저편에 또 다른 그리움의 잔상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원시 자연과 오래된 삶의 풍속이 남아 있는 오지를 찾아 떠나는 발길이 늘고 있다. 첨단 문명에 얹혀살면서 그 대척점을 찾아나서는 모순 같지만 문명의 태생이 아닌, 자연의 자식이란 반증으로써 태생적 욕망을 해소하렴이다. 어쩌면 그것들 속에 숨어있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본능적인 적응기제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문명할수록, 삶이 여유로워질수록 제 본연을 찾으려는 시도는 더 치열해지리란 가정이 가능하다. 낡고, 늙고, 오래된 것들에 대한 새로운 가치 설정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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