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 30년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
  • 제주신보
  • 승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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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특임교수/논설위원

지난 9일 독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30주년을 맞이했다. 베를린 장벽이란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서쪽 약 155㎞에 걸쳐 구축된 장벽이며, 주민들이 서쪽으로 탈출하는 것을 막으려는 舊동독일 정부가 1961년에 구축한 것이다. 가령 서울이 그러한 장벽에 의해 분단됐다면 얼마나 끔찍할 것일까. 베를린 장벽은 38선 이상으로 동서 냉전의 부조리를 상징했다고도 할 수 있다.

장벽 붕괴로부터 거의 1년 만에 동서 독일은 재통일을 달성하고 베를린은 탈냉전과 분단 극복을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1998년 3월에 독일을 공식 방문하고, 남북의 화해 협력을 호소하는 ‘베를린 선언’을 발표한 것도 이 도시의 그러한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한 지 얼마 안 되는 2017년 7월에 한반도의 비핵화와 남북 화해를 호소하는 ‘베를린(제2) 선언’을 천명하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가동할 계기를 마련했다.

독일 분단 극복의 교훈이 한반도에 가지는 의미와 관련해서 상기되는 것은 1996년에 이루어진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2주에 걸친 방한이다. 사회사상의 세계적인 거인의 방문은 한국 사회에 상당한 ‘선풍’을 일으켰다. 서울대학교와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는 2000명 이상의 청중이 몰려들었고, 주요 일간지들도 강연 내용 소개와 논평을 연일 게재했다.

하버마스는 한국에서 진행된 일련의 강연을 통해서 장벽 붕괴 후 독일 사회에 거칠게 불어댄 민족주의의 과잉, 그 열기를 타면서 동서 주민의 충분한 소통도 없이 성급히 단행된 흡수 통일 과정을 성찰하면서 이를 추진한 그 당시 콜(Helmut Kohl) 정권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한반도는 독일의 잘못을 교훈 삼아 시민적 연대와 자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지향해야 함을 거듭 강조했다(Habermas and the Korean Debate, Seoul National University Press 1998).

장벽 붕괴 이후 30년이 세월이 지나면서도 동서 간 격차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舊동독일 지역에서는 극우정당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9월에 독일 정부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舊동독일 주민의 57%가 자신을 ‘2급시민’으로 간주하고, ‘동서 통일은 성공했다’고 대답한 주민은 38%에 머물렀다(아사히신문 11월 9일자). 이렇듯 오늘날 독일의 현실은 당시 하버마스의 예언의 타당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하버마스의 시민주의적인 접근 방법은 당시 한국 지식인사회에는 먹히지 않았던 것 같다. 저명한 정치학자로서 김대중 정부에서 주일대사를 지낸 최상룡 교수는 ‘시민주의와 민족주의와의 관계’에 관해서는 ‘하버마스와 평균적 한국 지식인 사이에 접점을 찾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라고 해야 했다.

같은 냉전의 산물이라고는 해도 독일과 한반도와는 여러 면으로 차이가 있다. 특히 한반도가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겪었다는 사실은 분단을 독일보다도 훨씬 강고한 것으로 만들었다. 상호간의 적개심이나 군사적 안보의 논리가 민주적인 의사소통이나 시민주의의 논리를 억누르는 시대가 이어졌다. 하지만 ‘촛불혁명’을 거친 한국사회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성숙된 시민사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시민주의적인 접근 방법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기반이 드디어 갖춰졌음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