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말·말
말·말·말
  • 제주신보
  • 승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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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진 수필가

자동차로 목적지를 찾아가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처음 긴가민가한 그리로 다시 가기 위해 유턴 자리에 들어선다. 잠시 멈춰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찾아드는 생각이 있다. 내 삶도 이처럼 어느 한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고등학교 때 일이다. 어릴 적부터 가깝던 친구와 버스 좌석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이런저런 말을 하다 이야깃거리가 궁해지자 볼 때마다 입고 있는 그 애의 연분홍색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살찐 사람은 환한 색상은 피해 주는 게 좋다고 하더라.” 무심코 뱉었을 뿐인데 싸하게 굳어 가는 얼굴을 보았다. 내 입놀림이, 오지랖이 문제가 될 줄이야.

말 속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면,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안긴다면 그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거친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 내 말이 그랬으리라. 단벌일지도 모를 그 애 바지에 대해, 어쩌면 뚱뚱한 몸이 콤플렉스였을 그 애 상처에 대해 그만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말에 베인 상처 때문이었을까. 그 애가 나를 모른 척했다. 아무것도 아닌 게 더 예민할 수도 있는 사춘기 시절, 말 한마디에 나는 친구를 잃었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했던 말을 거두고 싶다. ‘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는 옛말이 그저 있는 게 아니었다.

허투루 던진 말이 누군가에겐 생채기가 된다. 작가 이기주는『말의 품격』에서 말의 귀소 본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강물을 거슬러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연어들처럼,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 또한 그러하다고 한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고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는 것이다.

요즘 댓글을 볼 때마다 나는 이 ‘귀소 본능’을 떠올린다. 예전에는 다양한 의견들에 나름 진지하기도 하고 재치 있는 언어 선택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었다. 이젠 아니다. 얼토당토않은 말들의 잔치인 듯하여 들여다보기를 머뭇댄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익명성 탓일까.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순기능보다, 신분이 드러나지 않기에 거짓이나 심한 욕설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게 되는 역기능이 문제시된다. 확실치 않은 거짓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덧붙여 퍼뜨리고 있는, 말이 말을 만드는 시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한 마음에는 악한 본성이 고개를 든다고 한다. 지역감정과 남녀 차별을 부추기고, 정치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은 벽 뒤에서 행해지는 언어폭력들. 자신들이 내뱉은 말들이 언젠간 본인들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혹여 짐작이나 할까.

지난달 모든 이들에게 주목을 받았던 한 장관의 사퇴 발표가 있었던 날 우리를 놀라게 한 또 다른 뉴스가 있었다. 유명 아이돌이었던 젊은 여자 연예인이 악플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보도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TV에 나와 웃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악플의 무게를 힘겨워하고 있었다. 천 냥 빚을 갚는 값진 말도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멈추게 하는 비수 같은 말도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안타까움이 오래 머문 날이었다.

배려 섞인 말 한마디가 따뜻한 차 한 잔처럼 온기가 되는 계절 속에 있다. 내가 건네는 말 어딘가에 옴츠려들게 하는 뾰족함은 없는지 만지작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