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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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신보
  • 승인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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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광팬의 ‘狂’은 ‘미치다’란 뜻인데, 그렇게만 읽을 건 아니다. 대상에 대한 깊은 관심이나 열정적 사랑으로 읽어도 좋다. 한시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독서광, 수첩에다 끊임없이 끼적여 넣는 메모광, 낚시에 미쳤다고 낚시광이다.

하지만 광팬은 좀 다르다. 자신에 몰입하는 게 아닌, 특정인 혹은 어떤 분야에 죽자 사자 쏠리는 현상이다. 연예인이니 스포츠맨, 트로트 열풍 등에 빠져드는 경우다. 드라마를 보며 또는 경기를 통해 마음이 사로잡혔거나 삶의 애환을 담은 애틋한 정서에 이입되면서, 존재감에 열광하고 환호한다. 그쯤 되면 ‘광팬’ 수준이다.

나는 전혀 연이 닿지 않음에도, 대한민국의 국민적 사랑을 담뿍 받는 나이 어린 한 친구를 끔찍이도 아낀다. 축구 국가대표선수 캡틴 손흥민. 1992년생이니 요즘 잘 나가는 영화 ‘19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보다 열 살 아래다. 부친이 프로답게 축구에만 전념해야지 가정을 가지면 힘이 분산된다고 해 결혼이 선수 생활 뒤로 미뤄졌다는 그다. 한데도 이 친구 아버지 말 한마디에 고분고분 순종한다. 어린 나이에도 그의 핏속엔 부자유친의 DNA가 녹아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손흥민이라는 선수에게 줄곧 눈을 보내왔다. 무척 좋아한다. 그의 광팬이다. 국가대표선수란 이름을 달았거나 달고 있는 여느 선수들과 차별화해 보는 거다. 축구는 골로 말하는 경기다. 특히 국가대표선수는 골로 나라를 빛내야 한다. 그건 기본적인 임무다. 한데 축구 선수로서 골을 넣는 탁월한 기술 못잖게 인간적인 따스한 품성을 지닐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닌가. 손흥민 선수를 내가 찾던 바로 그런 이상형으로 벌써 점찍어 놓았다.

그새 몇 년, 그에 대한 애정이 쌓여 단단해졌다. 지난 번 에버튼과의 원정경기에서 과도한 백태클로 고메스 선수에게 큰 부상을 입혀 강제퇴장에 3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가슴이 뜨끔했다. 경기장을 나오며 그는 머리를 감싸며 눈물을 흘렸다. 전파를 탄 이 장면에 수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팀의 항소로 징계가 바로 풀린 걸 보면, 그에게 고의성이 없었던 게 명백해졌다. 가슴 쓸어내렸다. 광팬이니까.

브라질 월드컵에서였나. 그라운드에 길게 엎뎌 눈물 흘리던 장면이 떠오른다. 볼을 몰며 비호처럼 골문을 향해 폭풍 질주해 상대를 초토화시키는 그답지 않게 감정이 여리다. 그런 모습이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한국에 손흥민이 있다는 걸 일본이 시샘할 정도다. “태클로 상대선수에게 큰 상처를 준 손흥민의 레드카드가 취소됐다.” ‘사커킹’이 약 올라,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걸었잖은가. 본성은 못 속인다.

손흥민이 연속 골을 넣고 있다.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의 유럽무대 최다 121골을 경신해 124골이다. 전설을 넘으면 무엇이 되는가. 올해 나이 스물여덟로 젊음의 정점이니, 보나마나 꽝꽝 골을 터트릴 것이다. 언젠가 부상 소식이 있었을 뿐 축구선수로 치명적인 부상도 없다. 볼을 영리하게 찬다.

팀의 주공격수 케인이 처지면서 중심 추가 손흥민 선수에게로 이동하고 있다는 관측에 주목한다. 그에게 서서히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지금 그는 달아올라 뜨겁다.

유럽은 시차가 커서 그의 경기를 종종 놓친다. 아침에 깨자마자 인터넷을 뒤진다. SBS가 영상을 보여준다. 골 장면에 신이 난다. 날겠다. 나는 손흥민의 광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