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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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새벽 5시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나는 나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즘 새벽에 잠에서 깨는 날이 많아졌다. 새벽잠이 없어진 것이다. 저녁 산책을 바꿔보기로 한 건 단지 그 때문이었다.

조간신문을 대충 일별一瞥하고 대문을 나섰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마을 농로에 들어서니 한기寒氣가 밀려온다. 오등봉 쪽이 아닌 연북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길도 좋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구불구불한 농로엔 밤샘주차 차량으로 빼곡하다. 우리네 할머니들이 새벽을 열던 농로가 차량 노숙 장소로 변하고 있다니 격세지감이다. 그 할머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할머니들 모습이 파노라마가 되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10여 분을 걸었을까? 인간이 삶을 마감하는 곳 장례식장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통과의례를 위해 장례식장은 새벽에도 불야성不夜城이었다. ○○패션이라는 점포가 눈에 들어온다. 패션이라니 부모님 상중喪中에 패션 상복을 입는 시대가 되었단 말인가? 장례식장이 성업이라 주변에는 장례용품점이나 편의 시설들이 많아 장례 타운이라 해도 좋을 만큼 상권이 확장에 확장을 거듭한 모양새다. 패션과 함께 화원花園과 해장국집 여기에 카페까지 등장하더니 곧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점 스타벅스가 개업한다는 영문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점입가경이다. 장례를 치르려는 건지 축제를 하려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가는 세상이다.

의원(醫員)이 병 고치면 북망산(北邙山)이 저러하랴.’ 김창업의 시조가 아니라도 병원은 구완보다 장례사업에 더 혈안이 되어 있다. 나 혼자만 전통문화를 고집해봐야 꼰대라고 할 것 같아 생각을 접기로 했다. 발길을 재촉해 보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패션이라는 용어가 마음이 걸린다.

장의차 행렬이 새벽 공기를 가르며 기다랗게 늘어서 있다. 마지막 길을 떠나는 영가靈駕를 위해 잠시 합장을 하며 장례식장을 벗어났다. 이내 도로에는 새벽을 여는 자동차 소리로 가득하다. 6차선 연북로에 들어섰음이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 자동차들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대원 마을 쪽으로 방향을 돌릴 즈음 미명未明이 어둠을 밀어내자 군집을 이룬 고급 타운 하우스에 유치권을 행사한다는 커다란 현수막이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가을이 깊을 대로 깊었다. 소설小雪이 코앞이고 보면 곧 첫눈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천륜지정天倫之情도 변해가는 우리네 인생살이가 안타까워서일까? 어느새 내 뜨락엔 새벽을 여는 늦가을 햇살이 곱게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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