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갚은 할머니
빚을 갚은 할머니
  • 제주신보
  • 승인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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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운명이란 과연 정해진 과정일까. 땀과 노력의 가치로 평가받을 수 없다면 진정한 삶은 어떤 기준이 필요한가. 성경에서는 사랑이요, 불교에서는 자비라고 말한다. 결론은 겸손하고 용서의 크기를 달리하라는 가르침이다.

가난한 살림에도 언제나 미소로 일관하며 오고 갈 데가 없는 노인들을 친부모처럼 모시는 이가 있다. 스스로 만족하며 내일보다는 오늘을 살아간다. 그는 농담처럼 쌀이 떨어질 때 즈음에는 곳간이 채워지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어느덧 선물처럼 와준다고 이야기했다. 도깨비방망이처럼 두드리면 현실이 된단다. 이런 신비스러운 경험에 늘 감사하며 산다고 말했다. 결혼도 안한 노총각이다.

그런 분이 가장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운명하셨다고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다. 여러 가지 문제로 의논을 하고 싶다기에 약속을 미루고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지인들이 모여 앞으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았지만 액수가 부족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주머니를 열어 보탰다. 최소한 검소하게 장례를 치르자고 의견이 모인 후 직접 염을 하고 있는데 문득 며칠 전 찾아와 신세한탄을 한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그는 혼자 힘으로 대학을 마친 딸이 있는데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린다고 털어놨다. 작은 직장을 다니기는 하는데 두 식구 살림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남자를 만나도 금방 헤어지고 얼마 전에는 사기까지 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눈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심각한 상태라 어쩌면 실명할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까지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 또한 무슨 연류가 있겠지 싶어 영혼을 불러내 타협을 했다. 지금부터 내가 모든 것을 마무리해줄 테니 당신도 이 젊은 처자에게 행복을 주라고 제안했다. 인연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라고. 그러자 흔쾌히 허락을 했다.

일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후 아픈 눈이 간단한 수술로 완치됐고 친구의 소개로 맞선을 본 남자와 진지한 만남을 약속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예쁘게 교제 중인 연인이 찾아와 인사를 했는데 남녀가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닳은 꼴이었다. 하늘이 정해준 인연을 넘는 필연의 만남이다. 자녀를 낳으면 아마도 교수나 의사가 될 것이다. 예쁜 가정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