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보리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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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쌀과 보리는 비슷하게 보여도 DNA가 매우 다른 것 같다. 예전에 밭일을 하는 말과 소의 DNA가 비슷하게 보여도 무척 다른 것처럼 말이다. 말의 DNA는 소보다 돌고래에 가깝다고 한다. 소에게는 미안하지만 말의 지능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어릴 적 주머니에 생쌀을 넣었다가 조금씩 꺼내 먹었다. 오래 씹다보면 단맛도 났다. ‘라면땅’이나 ‘자야’ 같은 과자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의 치아로도 쌀은 으깨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리쌀은 다르다, 보리쌀은 단단해 생으로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처럼 쌀과 보리의 강도가 달라 반지기밥(혼식·쌀 50%·보리쌀 50%)을 만들 때에는 손이 많이 간다. 강도가 센 보리쌀을 한 차례 먼저 삶아야 한다. 그런 후에 쌀과 함께 넣어 삶아야 반지기밥이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보리쌀은 덜 익고, 쌀은 너무 익어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이다. 입맛을 당기게 하는 것은 밥이든 반찬이든 어울림의 맛이다.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창의적인 사람이다. 이 강도가 센 보리쌀을 증기로 가열한 후 압력을 가해 납작보리쌀을 만든 사람 말이다. 거친 보리쌀밥에 비해 납작보리쌀밥은 무척 부드럽다. 밥맛이 달라진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또한 납작보리쌀의 경우 보리쌀의 두께가 얇아져 끓는 물에 쉽게 익어 밥 만드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납작보리쌀은 한 차례 먼저 삶아야 하는 일반 보리쌀과는 달리 쌀과 함께 넣어 반지기밥을 만들 수 있다. 일석이조인 셈이다.

단지 보리쌀에 압력을 가했을 뿐인데 그 효과는 대단했다. 그러니 납작보리쌀이야말로 쌀이 모자라던 가난한 시절, 창의적인 사고의 생산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주머니에 쌀을 넣고 다니며 먹다가는 바보로 찍힐 것이다.

요즘 어린이들의 치아가 쌀을 으깨 먹을 정도로 튼튼한지도 모르겠다. 한때 과자 대용이었던 쌀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 1인당 쌀 소비량은 61.8kg으로 한 가마니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는 1985년 128.1kg의 절반 수준이다. 밖에 나가면 일식, 중식, 양식, 동남아식 등 음식 천지다.

24시간 편의점만 가도 뭘 선택할지 모를 정도로 먹을 게 많다. 쌀을 대체하는 음식이 쏟아지고 있다.

쌀도 이처럼 홀대받고 있는데, 납작보리쌀은 지금 어디에서 납작 엎드린 채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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