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왕국 경관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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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대표·산림치유지도사/논설위원

며칠 전 영실코스로 한라산 윗세오름에 다녀왔다. 아침이라 그런지 차가운 기온이 얼굴을 스친다. 계절에 순응하는 나뭇잎들이 고운 빛깔로 익어가며 떨어진다. 마치 가장 아름다울 때 침묵과 함께 옷을 벗는 것 같다. 가파른 절벽 너머로 풍겨오는 침묵의 무게감이 더하다. 그렇게 숲은 가을을 밀어내며 다가올 겨울 채비에 여념이 없다.

이는 한라산 늦가을 경관 감상의 일면이다. 맑은 날 윗세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또 다른 느낌이다. 하향곡선을 따라 이어지는 바다 저편 수평선이 눈에 들어온다. 볼록볼록 솟아난 오름들이 평면의 단조로움을 지운다. 시야를 상향곡선으로 옮긴다. 거대한 암벽이 최정상의 자리 백록담을 떠받치고 있다. 차분하면서 근엄하다. 무한한 가능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외에도 경관 감상은 오름왕국 곳곳에서 즐길 수 있다. 어디를 가든 독특한 경관미가 있다. 그중에서도 오름 정상에서 보는 경관 감상이 일품이다. 중산간 들판을 뒤덮은 푸른 빛 초지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부드러운 털옷을 입은 것 같다. 한편에는 덤불 숲이 자리 잡고 있다. 얽히고설켜 있는 곶자왈이다. 모든 번민을 받아안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억새의 물결이 나타난다. 회색빛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한들한들 여유로움의 극치이다. 그 너머로 들어오는 흑갈색 밭에는 농작물이 가을빛을 낸다. 노랗게 물든 감귤이 곁에서 양념을 친다. 밭 둘레를 따라 밭담이 원을 그린다. 돌은 돌을 의지하고 그 돌은 서로를 의지하며 울타리를 만든다. 울타리는 곡선과 곡선으로 이어진다. 최고 자연스러움이다.

밭담 너머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들어온다. 높다란 건물도 있고 농촌의 한적함도 있다. 그리고 나타난 해안선. 밀물과 썰물의 놀이에 따라 춤을 춘다. 해안에 부딪히는 파도는 하얀 거품을 내며 부서진다. 망망대해 푸른빛 바다가 일렁인다. 어느새 햇빛이 달려와 에메랄드빛 바다 보석을 만든다. 참으로 눈부시다.

오름왕국 경관은 수많은 생명과 자연물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걸작품이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적 활동까지 엮어 맛깔스럽다. 마치 백록담에서 바닷가까지 흘러내린 거대한 열두 자락 치마폭과 같다. 해안선은 타원형 치마 끝자락처럼 감아 돈다. 아름다운 색깔로 수놓은 치마폭이 산야를 덮으며 살랑거린다.

그래서 오름왕국 경관은 거칠지 않다. 거대하거나 위험스럽지도 않다. 간담을 죌 정도로 아슬아슬하지도 않다. 오히려 낮으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이다. 올록볼록하면서 오밀조밀하다. 아기자기하다. 여성스러움의 조화를 이룬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 접근성마저 뛰어나다.

그렇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그 아름다움을 그리워한다. 외국인들마저 그렇다. 외국인 관광객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가 있다. 1순위로 ‘경관 감상’을 꼽고 있다.

경관 감상은 심리적 안정을 높여준다. 이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스트레스 상태를 완화한다. 흥분 상태에서 높아지는 코르티솔 농도를 떨어뜨리고 교감신경과 혈압, 심장박동수를 낮춘다. 즉 긴장과 불안을 해소한다. 어쩌면 부드러운 오름왕국 경관이 심리적 안정에 더 좋은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경관 감상이야말로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현대인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경관 감상으로 마음의 안정과 삶의 여유를 찾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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