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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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세월이 수놓은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사위고 있다. 홍시 몇 개 남았던 것마저 따 버리자 마당의 감나무는 서둘러 잎사귀를 떨구며 겨울 채비에 분주하다.

새들의 먹이로 놔둔 이웃집 단감나무는 아직도 허공에 풍경을 주렁주렁 걸어 놓았다. 참새 동박새 직박구리가 끝물에 향연을 즐긴다. 새들은 과식하지 않고 낭비가 없다. 내일을 헤아림인지 쪼아대던 감 두셋이 바닥날 때까지 파먹는다. 화살나무가 가까이서 검붉게 잎을 채색하며 새들의 생태에 추임새를 넣는다.

찬바람이 분다. 잠들었던 쓸쓸함이 깨어난다. 계절이 인생을 닮은 건지 인생이 계절을 닮은 건지 연민의 눈길을 나눈다. 싹싹한 발걸음으로 겨울이 산등성이를 내려오면 왠지 사람이 그리워진다. 곁에 가족이 있어도 시원의 사람을 그려 보는 것일까.

11월에 들면 나는 ‘11’이란 기호를 보며 두 사람을 연상하곤 한다. 마주한 두 사람이 환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연인이어도 좋고 부부나 가족 또는 지인이어도 상관없다. 마주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람, 말없이도 말이 되는 사람을 만난다면 세상에 태어난 축복이 아닐까.

두 사람이 동행하는 모습도 희망적이다. 함께한다는 건 태생적이며 숙명이다. 부모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갈 길을 찾아 헤맬지라도 둘이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내는 힘의 원천이다.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살이이듯이, 둘이 등을 돌리기도 한다. 틈이 벌어질수록 세파는 거세고 미움과 증오가 난무한다. 마음의 겨울은 춥고 깊어질 것이다. 가는 발길 따라 서로에게 다가가는 너그러움이 넘쳤으면 좋겠다.

일전에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할 때였다. 앞 좌석에 80대쯤의 할머니 셋이 자리하더니 이야기가 이어졌다. 청력이 약해진 탓인지 대화 소리가 꽤 크다.

노인들 화제의 첫머리는 박아놓고 건강일 테다. 할머니들도 여기저기 아파 어느 병원에 나다닌다는 얘기를 풀어 놓는다. 이어 잠시 바깥나들이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하여 밤잠이 힘이 든단다. 늙은이 둘이서만 집에 있어 봐야 재미가 없다느니, 온갖 정성을 쏟아왔는데도 우리 집 양반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고 푸념도 섞인다.

요즘도 밀감 농사를 하느냐는 말에 몇 년 전에 아들딸에게 나눠주고 나니, 이렇게 편한 걸 오래도록 매달렸던 게 후회스럽다고도 한다. 둘이 먹으면 얼마나 먹느냐며 자식들에게 보태주려고 쉬지 않고 일했는데, 자식들은 자기 새끼밖에 모른다며 서운함을 실토하기도 한다.

할머니들 이야기 속엔 일생의 체취가 담뿍 스며있다. 이 고장 노인들의 고만고만한 삶이 아닐까. 야속하게 세월만 가버리고.

늙음은 노을의 길, 그 과정이다. 이곳저곳 탈이 나서야 질곡의 나날을 그리움으로 회상하게 될 것이다. 글쎄, 지금 함께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내겐 별로 없다. 그저 미소로 세상 한구석이 밝아지기를 바라는 무리 속으로 합류하고 싶을 뿐. 견딜 만한 추위로 겨울이 다녀가기를 소망할 뿐. 내 편 네 편이 아니라 시비를 놓고 토론하고 비판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할 뿐.

어느 시인의 시구를 떠올린다.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11월 끝자락에라도 만날 사람이거나 만나러 가는 사람이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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