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 무렵 초록 잎사귀마다 주렁주렁 달린 황홀한 노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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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바람난장-서귀포시 도순동 (下)
애틋한 마음을 담아 키운 감귤에는 제주도민들의 인생이 담겨있어
섬의 모든 감귤 밭이 언제나 눈부신 ‘어느 봄날’이기를...

바람난장 가족은 감귤의 상큼한 향을 따라 서귀포시 도순동에 위치한 한 감귤밭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는 탐스러운 귤들이 무럭무럭 익어가고 있었다. 

이 섬의 다정한 호칭,

귤을 따며 ...
 

아마 서른 어느 해 겨울이었을 것이다. 노랗게 잘 익은 감귤 밭 한가운데서 망연자실한 눈빛을 만났다. 과잉 생산과 잦은 비로 감귤 값이 크게 떨어지면서 어쩔 수없이 산지폐기를 앞둔 부부였다. 자식 보듯 키운 감귤이 휴지조각이 되는 심정. 소리 내어 울던 그 절망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헤아릴 수도, 위로를 건넬 수도 없는 그 마음. 그 해 겨울 제주의 많은 농가들은 그렇게 눈물로 한숨으로 차디찬 겨울을 맞이했다.

 

오죽하면 대학 나무라 불렸을까. 제주의 감귤나무는 인고의 시간을 건너 헌신의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태산을 들어 옮기고 망망대해를 끌어안듯, 그 간절한 마음으로 애틋하게 키워낸 나무인 것이다. 농촌의 근심이 커져만 가는 요즘, 제주의 농가들은 감귤을 따며어떤 계절을 보내고 있을까. 이혜정 님의 시낭송이다.

 

귤나무 굽은 등허리에

하늘이 추운 듯 오도카니 앉아 있다

상심한 햇살은

할쑥한 얼굴로 귤밭을 어슬렁거린다

 

방풍 숲에선 이따금

팽나무 이파리 늙은 가을

새앙쥐처럼 이리저리 고개 내밀고

열매의 마지막 숙성을 위하여

하늬바람은 밤낮으로 설레발을 떤다

 

고독할수록 더 반짝이는 그리움 하나

귤향 따라 밀려들고

누군가 내 안에서

회억 속을 한없이 발서슴하는데

하나 남았던 멧비둘기마저 떠난다

떠나는 것들이 많구나 입동 날은 쓸쓸하다

 

빈 농약병 속으로 바람이 잇달아 기어 들어간다

빈 병도 가야 할 곳이 있다는 듯

부웅부웅 뱃고동 소리를 내는데

밭 구석에 피어 싱그럽게 웃고 있는

때늦은 들국만 고독에 강하구나

 

-양전형, ‘귤을 따며전문

 

얼마나 부지런한 손길이 다녀간 것일까. 초록 잎사귀마다 주렁주렁 달린 노란 빛이 황홀하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히 제자리를 찾아간 결실들. 들녘이 고울수록 사람살이는 고달픈 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단 하나 뿐인 감귤품종 인자 조생을 키워내지 않았는가. 그 눈부신 연정에 바치는 고결 님의 색소폰 연주 그대 그리고 나가 가슴을 채운다.

 

무대는 절정을 향해 가고 하늘도 바람도 더 더 깊어진다. 그래, 온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었지. 한 해 끝자락을 앞둔 11월은 자꾸만 이름을 부르게 된다. 연인, 친구, 가족. 오랜 이름들은 부르는 것만으로 허전한 옆구리가 따뜻해진다. 그 자체로 체온인 것이다.

 

오현석 님의 리코더 연주 안에서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 둘 떠올려본다.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어린 시절 입맛처럼, 기억 너머 그 이름엔 달큰한 향기가 난다. 그렇게 다정한 호칭을 건네는 두 사람, ‘

 

그대 없이는 못살아!’. 황경수 님의 노래와 딸의 바이올린 연주가 빚어낸 사랑스러운 하모니에 미소가 번진다.

 

 

이 계절이 아름다운 건 풍경 때문만이 아니다. 낙원이라는 이름을 걸고 감귤 밭을 일궈온 가족의 사랑과 헌신, 그것이 우리에게 건네는 기쁨과 감동이 생생히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다시 빌어본다. 윤경희 님의 노래처럼. 섬의 모든 감귤 밭이 언제나 눈부신 어느 봄날이기를...

 

사회 정민자

그림 홍진숙

시낭송 이혜정

성악 황경수 윤경희

반주 김정숙

트럼펫 이태주

색소폰 고 결

리코더 오현석

무용 박소연

사진 허영숙

영상 김성수

음향 고한국

글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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