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로스 신드롬(pet loss synd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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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우리 집엔 강아지도 고양이도 없다. 개를 길러 보자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고양이는 집 안에 들인 적이 없다.

개는 영물이고 아이들 교육과 정서를 위해 시도했으나 다 실패했다. 반듯하게 집도 놓아 주고 조석으로 먹을 것 잘 주고 술 마시다 갈빗집에서 뼈다귀를 싸고 와 대접을 했는데. 가출해 돌아오지 않은 게 첫 번째. 한 번은 털이 빠지는 병에 걸려 손을 못 써 옆집에 넘겼고, 얼마 전엔 진돗개 족보에 올라 있단 말에 그야말로 애지중지 했다. 나서 한 달도 안된 놈을 눈 가리고 데려다 품었다. 흰빛이 눈부셨다. 내 손으로 목욕시키고 마당을 돌며 놀아주다 목사리를 띄우고 산책도 했다.

두 해째던가. 울 밖 덤불숲에서 쉬를 시키고 있는데 앙 하고 내 손을 무는 게 아닌가. 창졸간 일격을 당하니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녀석을 버리기로 했다. 충견까지 바라지 않았지만 주인을 물다니. 그렇게 아꼈건만. 참을 수 없었다. 길 건넛집 과수원으로 보내 버렸다. 막상 떠나고 나자 서운했지만 물렸다는 감정에 눌려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자 했다. 그 후도 밥그릇 들고 온 집 아이며 이웃집 사람을 물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다음 갈 곳은 정해져 있다. 고약한데도 마당 구석 매었던 유자나무에 눈이 간다. 정이란 그런 건가.

대문 지붕에 올린 보리밥나무 숲에 길고양이가 새끼 한 마릴 쳤다. 한 달이 지나자 마당에 내려 어미 찾아 구슬피 운다. 가여워 몇 번인가 접시에 먹을 걸 내줬더니 현관 앞까지 접근한다. 안으로 들일 뻔했는데 사태가 벌어졌다. 먹거리가 생긴 걸 눈치 챈 동네 길고양이 여럿이 몰려들었다. 소름 돋았다. 먹이 보급을 딱 끊었다. 새끼가 며칠을 두고 울었지만 마음을 닫았다. 동물들과는 그렇게 절연했다.

거둬 어쩔 것인가. 끝을 생각했다. 죽었을 때 내가 책임지지 못할 것 같다. 아예 거두지 말자 단호했던 건 잘한 일이란 생각이다.

글방에 나오는 여류수필가 K에게서 작품 한 편을 받았다. 〈펫로스〉. 생소했다. 읽으면서 베일을 벗었다. ‘반려동물의 죽음’이란 뜻이었다. K는 반려동물을 사람으로 동일시하고 있었다.

“오래전에 내 품을 떠난 고양이 ‘톰. 비록 오일시장에서 데러온 아이지만 아름다운 목소리와 우아한 걸음걸이로 나를 매료시켰다. 소파 뒤에 들어가 조용히 쉬고 있다가 내가 ’톰 어디 있어? 하면, 야옹하고 대답하면서 나오는 아이였다. 너무 어린 것 같아 예방접종을 미루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았다. 그것도 3일째나 지나서야 알아챘으니 참으로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의 글의 일부다. 마지막 인사도 사랑도 나누지 못한 채 톰은 쓸쓸히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슬퍼했다.

강아지와의 또 다른 이별을 겪었고, 지금 함께 있는 강아지 초코는 12살, 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아, ‘이 아이를 잃으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있다. 그러나 반려동물은 저 세상에 먼저 가 주인을 마중한단다. “아이의 영혼은 늘 내 주변에 있는 것을 믿는다. 엄마에게 힘내라 응원할 것이다.”에 이르러 먹먹했다. 당연히 아이라 하니 화자는 ‘엄마’라야 하겠지만.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고 겪는 상실감과 우울증상이 ‘펫로스 신드롬’. 외상 스트레스 장애로 심하면 자살까지 한다니 두렵다. 집에 동물이 없는 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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