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상(朱爲上)의 지혜를 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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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철, 제주소방서장

흔히들 말하는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말은 병법 삼십육계(三十六計) 중에서 가장 마지막 전술인 ‘주위상(朱爲上)’을 한글식으로 잘못 발음한 것이다. 주위상(朱爲上)의 정확한 뜻은 ‘상대방이 나보다 훨씬 강한 상대라서 싸울 수 없다면 도망가는 것도 상책이 된다’라는 말이다.

이제 곧 연말이 다가온다. 이즈음 누구나 회식 약속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겠지만 사람들은 ‘술자리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들 말한다. 많은 이들이 음주보다는 가족들과 의미 있는 연말을 보내는 것을 더 ‘상책’으로 여기고 있다는 세태일 것이다.

술자리를 예로 들기는 했지만, 화재도 무엇보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예전과 달리 건축물이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을 뿐더러 가연성 건축자재도 더 많아져서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주의 특정소방대상물은 1만6032개로 이 중 11층 이상 고층 건축물이 231개이며 다중이용업소도 무려 3241개에 달한다. 이런 건물들을 이용하는 유동인구 또한 점차 늘고 있어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피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올해 우리 소방의 슬로건이 ‘불나면 대피 먼저’인 이유이다.

올해 6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은명초등학교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교사 2명이 신속하게 대피를 유도해 127명 중 사상자는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의 밀양 세종병원 화재참사에서는 환자와 의료진 등 총 19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소방청이 분석한 결과 병원 직원들이 화재 진화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대피가 늦어지게 된 것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올해 3월 소방청이 국민 2003명을 대상으로 ‘화재 시 대피 국민인식도’에 대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화재가 발생하거나 경보기가 울렸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119에 신고한다’는 36%로 가장 많았고, ‘소화기로 진화한다’는 21%, ‘집 밖으로 대피한다’는 20%에 그쳤다.

‘119에 신고한다’라는 응답이 가장 많은 것은 ‘과거에 화재 신고 방법이 유선전화뿐이고 전화보급률도 높지 않아 신고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119 신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1970~1980년대의 홍보시책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소방청은 분석했다.

지금까지는 신고와 소화기를 이용한 초동조치가 중요했지만, 이제부터는 위급한 상황이라면 그 장소에서 대피하는 행동이 선행돼야 한다. 불이나 연기를 보면 비상벨을 누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젖은 수건 등으로 코와 입을 막아 낮은 자세로 비상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대피해야 한다. 그것이 어려울 때는 옥상으로 대피해야 한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후에 119에 신고하고, 작은 불은 소화기 등으로 진화하는 것이 순서다.

겨울로 접어드는 11월의 마지막, 제주소방서는 도민들이 안전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며, 일선 현장에서 활동하는 소방관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화재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말을 상기해서 화재를 예방하고, ‘불나면 대피 먼저’라는 실천을 통해 인명피해가 없는 연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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