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佛國)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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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곤 수필가

불국사를 한 바퀴 돌았다. 화장실로 가는 중간에 너럭바위가 있었다. 팍팍한 다리를 두드리며 앉아 이쪽저쪽을 번갈아 보았다. 불국사 건물과 화장실, 어느 쪽이 진짜 절일까 혼란이 일어났다. 신심 없는 이의 눈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어 깨달음이 있는 그곳을 절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아내는 남편을 밀쳤다. 배낭 메고 혼자 육지에 다녀오란다. 어디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평소에 꿈꾸던 바를 실행에 옮겨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했다. 늘 울타리 안에서만 맴돌고 있는 남편이 갑갑해 보였을까. 평생을 소심하게 살아왔는데 가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채근하다가 지쳤는지 불쑥 카드 한 장을 내밀면서 물 건너 먼 곳에 있는 친구들이라도 만나고 오란다.

그 떠밀림에 내몰려 이곳저곳 잠시 돌다가 불국사에 발길이 닿았다. 곳곳에 안내하는 분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관광객 무리가 있었다. 나도 그들 틈에 슬그머니 끼어 귀동냥을 하였다. 석가탑, 다보탑을 쓰윽 살펴보고, 대웅전의 부처님도 멀리서 엿보기 하다가 비우라는 뜻을 담은 해우소에 다녀왔다.

몸이 가벼워졌기 때문일까. 커다란 나무그늘 아래 앉으니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찌르르 찌르르 맴맴. 나는 땅에, 그들은 저 위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한 세상 살아왔을까.

나는 기독교인이다. 오랫동안 교회와 벗하면서 그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였다. 어느 순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아주 약간의 깨우침을 얻었다. 누가 알려주어서가 아니라 , 그렇구나라는 감탄사와 함께 찾아왔다. 알아 줄 이 없지만 보물을 발견한 듯 희열이 있고, 때로는 그 나라 이룰 수 없다는 부담감에 끙끙 앓을 때도 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부르짖었던 청년 요한은 폭군 헤롯에게 밉보여 목이 잘려 죽었다. 외진 갈릴리에서 떠돌다 십자가형에 처해졌던 예수님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소리 높여 외치며 온 몸으로 살았다. 저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죽어서 가는 곳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먼저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그분들은 외쳤다.

하나님의 나라, 신국(神國), 하늘의 통치가 있는 평화의 세상. 아픔도 눈물도 없고, 어둠과 죄와 죽음의 세력은 극복되어야 한다. 옛날 옛적 느비임(선지자들)이라 불렸던 분들은 어린아이가 뱀의 굴에 손을 집어넣고 소와 사자가 함께 풀을 뜯는 세상을 꿈꾸며 살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들에게 돌을 던졌을까.

갑자기 환영이 펼쳐졌다. 이런 것을 각()이라고 할까. 홀연히 불국사라는 현판 글씨가 가슴에 새겨졌다. 불국사는 말 그대로 불국부처님 나라의 절이라는 뜻이요, 신라왕실이 꿈꾸었던 불국정토의 모형이었구나.

청운교 백운교 계단 위로 회색 장삼을 입고 합장한 스님들이 줄을 지어 오르고 있다. 옛날에는 그 아래에 맑은 연못이 있어 마음을 씻었다는데. 하늘로 솟구치는 자하문에는 부처님을 감싸며 떠돌았던 보라색의 옅은 안개가 서려있는 듯하다. 석가탑 다보탑을 돌면 향단에는 향연이 피어오른다. 갑자기 북소리가 들려온다. 새벽마다 북을 두드려 어둠을 물리치고 밝음을 맞이했으리라. 북채를 잡은 스님 두 분의 엄숙하면서도 활달한 몸놀림이 눈에 선연이 그려진다. 다시 몇 계단을 오르면 본존의 온화한 미소를 만날 수 있다.

그래, 바로 그분이 왕이었다. 중생을 비롯한 세상 만물은 부처님 왕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으리라.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불국사에는 스님은 없었고 관광객만 가득하였다. 부처님은 떠났고 불상만 남았으니. 학승들에게 일갈했다던 어느 노스님의 호령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오는 듯하다.

, 이놈들아, 얼른 가서 절을 헐고 부처를 쪼개 장작을 만들어 짊어지고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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