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을 바라보는 경제심리학
깨진 유리창을 바라보는 경제심리학
  • 제주일보
  • 승인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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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석, 제주대학교 경영정보학과 교수/논설위원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는 1분에 약 천만 원 정도를 번다. 전자제품 매장에서 고가 TV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빌 게이츠는 매장에 가지 말고 사업에 전념하는 것이 낫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 돈, 자원은 제한되어 있다. 무제한으로 맘껏 쓰지 못하니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한다. 하나를 선택하면서 다른 것을 못하게 되었을 때, 못하게 된 것의 가치가 기회비용이다.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도 따져봐야 합리적이다.

낡은 보도블록을 새로운 보도블록으로 바꿀 때가 있다. 보도블록을 바꾸면 공사업체와 인부가 돈을 벌게 되어 경기부양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경제라는 것이 뭐 특별할 게 있나, 길을 만들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그 길을 부수면 다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해 보이는 이말은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틀렸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는데 돈을 쓰지 않고 다른 일에 돈을 썼더라면 더 나은 파급효과가 생길 수 있다.

기회비용을 설명하는 ‘깨진 유리창의 오류(broken window fallacy)’가 있다. 우화로 알려진 이야기는 동네 아이들이 잘못하여 빵집 유리창을 깨뜨린 데서 시작한다. 유리창이 깨지자 사람들이 아이들을 나무랐다. 지나가던 행인이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빵집 주인이 유리창을 새로 갈아 끼우게 되므로 유리창 수리업자가 돈을 벌 것이다. 돈을 번 유리창 수리업자가 다른 곳에 돈을 쓸 것이니, 새로운 소득이 늘어나 마을 전체로 보면 좋다는 것이다.

행인의 논리가 맞는다면 경기부양만큼 쉬운 일도 없다. 왜냐하면 동네 아이들이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유리창을 부수면 그만큼 경기가 더 좋아지기 때문이다. 유리창이 깨지면 부(富)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손실이 생긴다. 깨진 유리창을 잘못 해석하는 것은 숨어 있는 기회비용을 보지 못한데서 시작되었다. 빵집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다면 빵집 주인은 그 돈을 다른 곳에 쓸 수 있었다. 멀쩡한 유리창을 그대로 두고 새로운 기계를 사면, 기계 판매업자가 돈을 벌고, 운송업자가 돈을 벌고, 설비업자가 돈을 번다. 깨진 유리창은 새로운 일거리가 아니라 다른 일거리를 만들었을 뿐이다.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예산을 집행하는 경우도 깨진 유리창의 오류가 적용되기 쉽다. 정부의 예산집행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효율성이다. 정부가 개인과 법인에게서 거두어들인 세금을 만약 다른 일에 사용했다면 다른 분야에서 일자리가 생겼을 것이다. 정부는 실업률을 줄이고 경기부양을 위해 예산을 조기에 집행하겠다고 발표한다. 정부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정부 예산의 배분이란 결국 어느 한 쪽이 늘어나면 다른 쪽의 예산 규모가 줄어드는 제로섬 게임이다. 전반기에 예산집행을 늘리면 후반기에 사용될 예산이 줄어든다. 예산을 잘못 쓰면 더 잘 쓸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게 된다.

미국에서는 댐 건설이 일단 시작되고 나면 사업타당성이 낮아도 중도에 멈춰진 경우가 없다고 한다. 공사가 시작된 사업을 중도에 그만두면 이미 투입된 예산을 포기하는 것이 아까워서 수익성이 낮아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댐 건설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다. 돌탑의 아랫돌을 빼서 윗돌에 고였다고 돌탑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허투루 쓰지 말고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여야 경제가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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