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한 해의 기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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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칼럼니스트

저무는 한 해의 기로에서니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다. 힘든 삶에 겹쳐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던 게 우리의 정치가 아니었나 싶다. 삶에 신명으로 작용해야 할 정치가 외려 삶을 훼방하려드니 원망과 한숨 소리만 자자하다.

국민의 삶은 국가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다. 국민 주권이라고는 하지만 국민을 주도하는 건 국가 권력이다. 권력의 리더십에 따라 국민의 삶이 좌우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실사구시의 차원에서 입안된 정책을 펼친다면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며 발전과 번영을 구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과 사법권을 장악하려들고 선심성 정책을 추진할 재원이나 확보하려들면 국리민복보다는 정권의 의도대로 국가를 좌지우지 하려는 시도다. 구체성이 모호한 이념적 구호를 앞세우며 갈등과 분열은 외면한 채 포퓰리즘 공약이나 남발한다면 권력욕을 감춘 기만일 가능성이 크다. 몰락하는 남미 국가들이 그 전형이다.

국가 권력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대통령의 권력은 가히 무소불위다. 거기다 사법부의 견제 기능을 무력화할 수도 있는 또 다른 권력 기관을 그 수하에 두려하니 정치판은 강행과 저지의 극한 대립이다. 국민마저 그 내막의 실체에는 아랑곳없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정치판 따라 대치하는 형국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인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좁은 통로(The narrow corridor)’에서 국가 권력이 강력해지면 괴물(Leviathan)로 변모하여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기에 이른다고 했다. 우리도 얼마든지 독재 권력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다.

공자의 논어에 정자정야(政者正也), 위정이덕(爲政以德)’이란 대목이 언급된다. 정치는 덕으로 바르게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또 공자의 정명론으로 요약할 수 있는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라는 구절은 국민 모두가 제 몫을 신명나게 하도록 자발성을 북돋워야 하는 게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좋은 정치란 예나 지금이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법적 기능이 아니라 포용과 화해의 덕치로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작금의 정치를 보면 정의를 앞세우며 적폐 청산을 외쳐대지만 외치는 자들의 민낯 또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난다. 거기다 국가 권력을 강화하려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온갖 규제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아우성이다. 오죽하면 외국에서조차 소득 주도 성장이 아니라 소득 주도 빈곤정책이라 비아냥댈까? 국가 발전 동력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들뿐이다.

이런 정치는 결코 좋은 정치가 아니다. 이 모든 정치 상황은 어설픈 정치 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국민 선택이 초래한 결과다. 국민이 선택을 잘못하면 정치는 정치꾼들의 욕망의 난장일 뿐이다. 그 폐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우리의 지난 역사는 그런 정치 폐해의 얼룩이었다. 이제 살만하니 또 다시 그런 어리석은 선택으로 고통의 멍에를 짊어지려는 건 아닌지. 이제는 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 책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 모두의 엄중한 시대적 소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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