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보와 플라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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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 수필가

스산하다. 남자들이 곧잘 가을을 탄다는데, 비교적 무딘 감각의 소유자인 필자인지라 그처럼 고상한 연유는 결코 아닐 테고. 노화처럼 변색되어 가는 잎을 떨구며 몸서리치는 앙상한 정원수를 바라보노라면 이름 모를 허전함이 엄습한다. 게다가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에도 흠칫 놀라 과오로 얼룩진 삶의 궤적을 더듬으며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한다.

뿐이랴. 소설(小雪)이 지난 밤하늘을 더듬어 가는 달빛이 유독 멀게만 느껴지는데, 이내 서늘함보다 쓸쓸한 빛 무리를 흩뿌린다. 그렇구나. 저 달빛이 야릇한 빛을 발하며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로구나.

그런데 잠깐. 그렇다면 달이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아니지. 정녕 아니지. 빛바랜 범골(凡骨)의 삶이 무에 특출함이 있으랴. 그저 시간의 물길 따라 자연스레 흘러갈 뿐인 것을. 하여 그저 내 마음이 허허롭기 때문일 테지.

그래.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결코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님을 알겠다. 당나라 유학길에서 해골의 물을 접한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급기야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담은

화엄경의 핵심 사상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유사한 견해를 의학 용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니 이른바 노세보(Nocebo)와 플라세보(Placebo) 효과가 그러하다. 전자는 당신을 해칠 것이다라는 뜻을, 후자는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라 한다.

선입견이 빚어내는 결과는 곧잘 대단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 상황에서 34명의 대학생들에게 그들의 머리 위로 전류가 지나가고 있으며, 그 전류가 두통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말을 했더니 3분의 2 이상이 두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의학적 실험을 통해 환자의 예상이 치료 결과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입증된 이 용어들은 각각 부정적 시각과 긍정적 사고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믿음이 있는 곳에서는 늘 희망이 샘솟게 마련이다. 다가오는 경자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인지적(認知的) 에서 비롯되는 부정적 색안경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플라세보의 잔향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손 모아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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