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신비 간직한 제주의 보물 비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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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포리 방사탑·비양도
마을주민 무사안녕 위해 쌓은 방사탑
해상안전 기원·주술 등 기능 다양해
2중 분화구 비양도, 탄생 전설도 많아
섬 오르고 내린 곳 지금도 남아 있어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천년의 섬’ 비양도. 비양도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 위한 도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천년의 섬’ 비양도. 비양도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 위한 도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에는 오래전부터 사악한 기운을 막기 위해 돌로 쌓아 만든 방사탑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도 방사용 또는 조형물로 쌓고 있다.

옹포리 해안에는 마을의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며 쌓은 방사탑이 비양도를 향해 서 있다.

2중 분화구인 비양도는 특이한 생태계를 간직한 제주의 보배 중 하나이다.

옹포리 해안 방사탑

방사탑은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에 불길한 징조가 비친다거나, 비교적 허()하다고 여겨지는 지역에 방위를 막아 마을의 평안을 비는 비보속신(備補俗信)에서 쌓은 탑이다.

좌우음양암수남북 대칭으로 쌓는 것이 보통이며 탑 위에 새의 형상을 한 돌이나 사람 모양의 석상을 세운다.

방사탑은 육지의 솟대와 거욱대와 유사해 장승이나 미륵신앙의 역할도 한다.

해상안전과 방사의 기능과 함께 전염병과 화재 예방, 아이를 낳게 하고 보호해 주는 주술까지 그 기능이 다양하다.

탑을 쌓아 올릴 때는 그 속에 밥주걱이나 솥을 묻고, 그 위에 돌담을 사람 키 이상 쌓아야 된다고 전해온다.

밥주걱을 묻는 이유는 주걱이 솥의 밥을 긁어 담듯이 외부의 재물을 마을 안으로 담아 들이자는 뜻이고, 솥을 묻는 것은 불에도 견뎌내라는 뜻이라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로 남북이 허하다 해 남대북탑(南坮北塔) 즉 남쪽에는 거욱대를 세우고 북쪽에는 방사탑을 세웠다.

옹포항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한 개씩 쌓았는데, 지금은 건물이 들어서서 동쪽의 방사탑은 옹포항에서 보이지 않는다.

천년의 섬비양도 탄생과 전설

천년의 섬 비양도가 외롭고도 아름답게 한림읍 옹포리 포구 앞바다에 떠 있다.

이곳 주변의 경치에 반해 날아와 섬이 됐다는 전설을 간직한 비양도(飛揚島), 1002년에 화산이 분출해 형성된 섬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초 무인도이던 비양도에 왜구들이 상륙해 해안마을의 재산을 약탈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

이러한 왜구의 노략질이 명월진성을 설치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이기도 하다.

18세기 초에 그린 탐라순력도 화폭 중 하나인 비양방록(飛揚放鹿)은 사슴을 생포해 비양도로 옮겨 방사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고려조인 1002년과 1007년 제주섬에서는 용암이 분출했으니, 천 년 전 제주선인들은 화산을 실제 목격했을 것이다.

탐라순력도를 그린 화공이 비양도에 붉은 칠을 했음을 유념하고자 한다.

화공은 우도의 비양도가 아닌, 수류촌(水流村)인 명월 근방에서 화산이 분출한 곳임을 표시하려 붉게 칠했다.

다음은 고려사에 있는 한 대목이다.

목종 56, 탐라에서 산에 4개의 구멍이 뚫리며 붉은 물이 솟아나오다 5일 만에야 멎었는데, 그 물이 용암이 됐다.

1002년에 탐라의 바다 가운데서 서산이 솟아나왔으므로 태학박사 전공지를 보내어 이것을 시찰시켰다.

탐라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산이 처음 나올 적에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 날이 캄캄해지면서 우레와 같은 진동이 나고, 무릇 7일 만에야 날이 처음 갰다. 산 높이가 백여 발이나 되고 주위는 40여 리 가량이 되며, 초목은 없고 연기가 산 위에 자욱이 덮였는데 바라본즉 석유황 같으며 사람들이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못했다.’라고 했다.

전공지가 직접 그 산 밑까지 가서 산의 형상을 그리고 돌아와서 왕에게 드렸다.

솟구친 서산(瑞山)은 오늘날 한림읍의 비양도다.

그래서 비양도를 천년의 섬이라 부른다. 중국기록에 의하면, 송나라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 만큼 비양도 폭발은 국제적 사건이었던 셈이다.

비양도에서 터져 나온 화산재가 날아다니고 그로 인한 쓰나미가 중국 해안을 강타했는지도 모른다.

1007년에 화산폭발로 생성된 섬인 서산은, 한림읍 비양도가 아닌, 안덕면의 군산 또는 우도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오래전부터 제주에서는 동비양(東飛陽), 서비양(西飛揚)’이란 말이 전해온다.

동비양은 동쪽 우도에 있는 비양도를, 서비양은 서쪽 한림읍의 비양도를 지칭한다.

하지만 한자로는 달리 쓴다.

우도의 동비양(東飛陽)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마치 날아갈 듯 서기가 어려 있다는 의미로, 한림읍의 서비양(西飛揚)은 날아와 오른 섬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 제주선인들은 한림읍의 작은 섬 이름으로 하필 날 비()자와 오를 양()자를 붙였을까?

그런 의심에서 출발한 필자는, 여태 전해지는 전설에 더해 새로운 전설을 지어 지역사람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지역의 향수와 호기심을 자극했던지 그들은 나의 전설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다.

섬들이 말하던 아주 오랜 옛날, 늘 신비로움이 묻어나고 오색구름이 뿜어져 나오는 한라산은 섬들이 가까이 있고픈 선망의 대상이었다.

중국의 추운 지방에 있던 섬 하나가 영주산이 있고 불로초가 있다는 이곳으로 날아오듯 바다를 미끄러지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어느 곳에서 한라산을 올려보아야 좋은지를 알기 위해 해안을 휘둘러보았다.

다른 섬이 먼저 차지하지나 않을까 염려한 섬은 지금의 비양도를 향해 다시 날아오르듯 달렸다.

마침내 지친 여정에 종지부를 찍기라도 하듯 그곳에 닻을 내리고 안식을 취하려 했다.

섬은 바다를 날()듯이 제주에 와서는 육지에 오른() 것이다. 그리곤 주변을 살폈다.

이런! 바다에 있어야 하는 것이 섬의 숙명인데. 이를 안 섬은 육지에 내렸던 닻을 다시 올리고, 올랐던 지역을 서서히 내려와 한라산이 잘 보이는 지금의 비양도에 다시 닻을 내렸다.

그런데 전설이 사실이듯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섬이 오르고 내린 곳에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다.

더욱이 처음 닻을 내린 곳에서는 오늘도 맑고 고운 물이 뿜어 나오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조물이라 부르는 용천수의 물로 오래전부터 술을 빚어왔다.

비양도가 서서히 내려온 지역은 수로가 생기듯 계곡이 형성됐는데, 옹포천이 바로 섬이 내려온 흔적인 것이다.

명월의 옛 이름인 수류촌(水流村)도 이렇게 이름 붙여졌을 것이다.

지금도 조물은 여기저기에서 용출돼, 섬이 내려온 옹포천 계곡을 따라 바다로 흐르고 있다.

비양도에서 한라산을 바라본다면, 오름 뒤에 더 큰 오름이 있고 그 뒤에 있는 한라영봉이 있어, 첩첩산중이란 말이 생각난다.

제주 곳곳에 있는 비경을 찾는 사람들은 비양도에서 보는 한라산이 제주에서는 최고로 아름다운 비경이라고들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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