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길목에서 마주하는 상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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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수필가·前 애월문학회장

겨울을 알리는 바람소리는 점점 깊어지고, 바람소리는 내 안에 잠든 삶의 영혼을 흔들어 깨워 놓고 있다. 이 작은 바람소리에도 흔들리는 내 마음은 어찌 이리 천박하고 가벼운지 모르겠다. ‘겨울은 눈 내리는 밤으로 깊어지고 생(生)은 눈물의 힘으로 깊어진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한해의 끝자락, 겨울의 길목이다. 조락의 계절인 가을에 이어 겨울은 모든 걸 비워내고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데, 나는 얼마나 성숙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부질없는 탐욕을 털어내고, 늘 이웃과 나누는 자세로 살았는지 성찰해 본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 돌아보면 남은 것이 없다. 그저 회한의 아쉬움만 반복할 뿐이다.

숱한 상념에 창문을 열고 창백해진 겨울 달을 가만히 올려다본다. 참으로 시린 달빛이다. 봄밤의 달처럼 유정하고 다감하지도, 가을날의 달처럼 명랑하지도 못하고 싸늘하게 얼어 있는 모습이 눈을, 마음을 시리게 하고 있다. 까닭도 없는 한기가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달빛을 휘젓던 바람이 잠시 숨을 죽이면 고요와 적막이 밀려오고, 기억의 저편에 밀쳐뒀던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오늘 같이 가슴 시린 겨울밤이면, 몇 년 전의 기억으로 마음을 신랄하게 하고 폐부를 찌르게 한다. 매서운 겨울 이른 새벽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시내 거리를 팔순의 할머니가 절뚝거리는 불편한 몸으로 폐지와 빈병을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길을 건너고 있었다. 모질고 질긴 삶 하나 악착같이 끌고 가는 그 뒷모습에서 쓸쓸함을 느꼈다. 할머니는 얼마나 시리고 아픈 마음으로 저 원죄와 같은 손수레를 끌고 다니실까. 삶은 얼마나 모질고 삶은 얼마나 불평등한 것인가. 문득 살아가는 시간들이 죄스러워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세상에 고통스러운 모든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행복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며칠 동안은 시리고 아픈 마음으로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은 어디에 없는가? 자문하면서 할머니의 생각에 따스한 밥, 편한 잠자리가 한없이 송구하고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뿐,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이내 돌아서고 만다. 작은 사랑과 베풂으로 세상이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고 가슴 설레는 일인가. 하지만 이 나이가 되도록 철들 줄 모르는 나 자신이 차라리 측은할 뿐이며, 이렇게 무심한 세월만 탓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속절없고 부질없는 못난 범부의 짓이랴! 내 자신의 답답한 모습 누가 훔쳐볼까 부끄럽고 두렵기만 하다.

오늘의 후회와 부끄러움이 앞날을 위한 삶의 밑거름이 되고 약이 되어 주리라 믿어 본다. 인간은 끝없이 흘러가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탐욕으로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해 반칙으로 추한 몰골을 드러내는 일부 지도층과 곳곳에서 가슴이 내려앉는 일들이 여기저기 터져 나와 안타깝고 그저 딱할 뿐이다. 끝없는 탐욕과 불감(不感)으로 혼탁한 세상, 하지만 혹독한 겨울 추위에서 하루하루 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어려워도 나 자신부터 이웃을 돕는 실천으로 살아가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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