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해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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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짧은 겨울 해를 보며 마음이 바빠 서둘러 밭으로 향했다. 계절 이운 곳 여기저기 잡초들도 나름의 겨울 준비를 하느라 눈이 가는 곳마다 맥없이 파리하다. 이파리들을 떨궈 놨나 하면 가지들은 앙상한 게 겨울 채비 중이다. 조금만 게을러도 잡초는 어느새 공들인 나무에 줄기를 뻗어 주인 행세하려 들곤 한다. 울타리 쪽으로 이때쯤 대충 정리해 놓아야 새봄 되면 훨씬 일이 헐거워진다, 잡초 중에서도 칡넝쿨은 참 성가시다.

생명력이 왕성한 칡(葛)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 조금만 틈을 보이면 얼른 자리 잡고 몸집을 키운다. 일단 터를 잡으면 이웃한 나무를 빙빙 감아 어느새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오르는 동안 넓적한 잎들을 수도 없이 펼쳐, 이파리 아래에 있는 나무에게는 단 한 줄기의 빛도 허락지 않고 차단해 버린다. 감긴 나무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끝내 말라죽어, 더불어 산다는 숲의 질서는 무색해질 뿐 아니라, 한 방향으로만 감으면서 그 세를 확장하는 것이다.

몰염치다. 그뿐일까. 오월이나 유월, 쉼터 여기저기 연보랏빛의 꽃을 수도 없이 매달고 있는 등(藤) 나무 정자를 볼 수 있다. 마치 고운 꽃등이라도 걸어 놓은 듯, 온통 오가는 이의 시선을 강탈하는 연보랏빛 고움이 주렁주렁한 정자. 이 고운 꽃의 줄기 역시 다른 의지할 곳을 붙잡으면 제 몸을 온통 기대어 이것은 또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간다.

하나는 왼쪽, 다른 하나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 칡과 등은 서로 꼬며 자라는 그들만의 특성을 지녔다. 이 두 나무가 한데 엉키기라도 하면 군데군데 잘라 꼬인 것들을 일일이 풀어야지 안 그러면 잘라내어도 꽈배기처럼 꼬아진 채로 있다.

이렇듯 가까이 있어 친한 듯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불편한 관계나 다툼을 칡과 등나무 엉킴에 비유하여 인간관계의 감정을 갈등(葛藤)이란 말로 흔히 표현한다.

요즘 뉴스를 보면 지루하다 못해 따분하기까지 하다. 해결할 민생 문제가 쌓였다는데도, 팽팽하게 서로 대치하며 자기편의 주장만을 고집한다. 과하게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볼 때면 그 주장이 맞나 하다가도 어느 말이 참이고, 어디부터가 자기주장인지 가늠이 어렵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려는 모습들, 심지어 사실과 자기주장이 대립으로 갑갑할 정도다.

힘겨루기라도 하듯 서로에 대하여 대립적 구도로 각을 세우는 것만 봐도 그렇다. 국회에서의 여와 야, 노와 사, 정규직과 비정규직, 심지어 남과 여 등, 이 관계가 어찌 대치만 하는 관계인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양쪽 모두 일정 부분씩 잘잘못이 있을 것이다. 서로가 그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이 더 크다거나, 원인 제공자라는 생각에서부터 감정이 틀어지는 것이다. 이것저것 모두 내 탓이 아니듯, 일방적으로 상대의 잘못만도 아닐 것이다. 일정 부분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수용할 때 감정은 수그러지며 관계가 회복되는 걸 주변에서 종종 본다.

더불어 사는 세상 속 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상대만 불편한 게 아니다. 개인의 정신적 편안과 육체적 안녕을 위해서라도 풀어 정리해 나가야겠다. ‘불편한 진실’이란 말이 있다. 인정 않고 싶지만 인정해야 되는 것들,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이 해가 가기 전에 정리하도록 마음을 열어두자. 다가올 경자년, 복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삭일 것은 삭여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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