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행복을 부르는 섬
가파도, 행복을 부르는 섬
  • 제주신보
  • 승인 2019.12.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가파도
조선 후기 소를 방목하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곳
청보리섬으로 유명…현재 휴식 취하며 따뜻한 봄날을 기다려
바람난장 가족이 가파도를 찾았다. 가파도는 조선 중기까지 무인도였다가 조선 후기 국유목장 설치로 소를 방목하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은 作, ‘행복한 풍경’
바람난장 가족이 가파도를 찾았다. 가파도는 조선 중기까지 무인도였다가 조선 후기 국유목장 설치로 소를 방목하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은 作, ‘행복한 풍경’

다시 서쪽으로 달린다. 배 안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모슬포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가오리를 닮은 섬입니다.’ 희뿌연 새벽 공기와 턱 밑까지 출렁이는 파도를 가르며 다다른 곳. 아무리 지척이라도 마음이 닿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 가파도다. 가파도는 행정구역상 서귀포시 대정읍에 속해 있다.

나는 대정읍에서 태어났지만 마흔 해가 넘도록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섬 밖에 섬, 바람에 떠밀려 살아야 했던 이유로. 어쩌면 넘실거리는 청보리섬으로 유명해서 관광지라는 북적거림을 핑계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초록으로 가득했던 그 보리밭은 이제 휴식을 취하며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

가파도는 조선 중기까지 무인도였다가 조선 후기 국유목장 설치로 소를 방목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제주에 표류했던 하멜이 처음 가파도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본섬인 제주도와 최남단 마라도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어, 거센 기류와 조류가 부딪쳐 이곳을 지나는 외항선들의 표류와 파선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탄 배도 멀미가 날정도로 심하게 출렁거렸다.

바람난장이 가파도로 간 까닭은 <보물섬, 우리가 만드는 가파도 이야기> 발표회에 함께 하기 위해서다.

비록 전교생이 열 명도 채 안 되는 초등학교지만 아이들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그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에게서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만큼 편안해 보였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마음에 있다는 걸 다시 새기면서.
발표회가 열리는 무대는 창밖으로 가파도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교실이었다.

자연은 얼마나 값진 보물인가. 그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이들의 무대는 말 그대로 천진난만이었다. 통통 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는 관객들의 박수를 끌어내고 흥을 돋웠다.

‘살아 있어 행복해, 네가 있어 행복해’ 후렴의 노랫말이 가슴깊이 꽂힌다. 문득 ‘살아있다는 것은 뭘까’하는 궁극에 빠져들었다. 살아있다는 건 공기 같은 거였다. 가파도가 살아있다는 걸 알려주는 기적선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기타 연주회가 끝나고 본격적인 바람난장 무대가 펼쳐졌다. 시낭송가 김정희님은 오승철 시인의 ‘가파도 4’를 파도에 출렁이듯 낭송한다.

오늘은 가파도 거쳐 마라도 가는 길
막무가내 따라나선 고추잠자리 두서넛
날개 끝 걸쳤다 놓았다 섬 하나를 홀린다

둥그런 수평선 따라 포제단도 둥근 걸까
신은 포젯날 벌어 한 해를 견디는지
뎅그렁 돌제단 위에 낙엽도 한 장 없다

숨비소리 거두며 돌아가는 구덕들
늙은 연애도 한 번 못해봤단 그 숨비소리
초가을 숨비기꽃이 축문(祝文)처럼 피어난다
-오승철, ‘가파도 4’전문.

‘늙은 연애도 한 번 못해봤단 그 숨비소리’가 가파도의 내력을 말해주듯 험난한 삶의 이력들이 줄줄 쏟아진다. 모진 풍파에도 꽃은 핀다. 숨비기꽃은 숨비소리가 피워 올린 한줄기 희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좀처럼 듣기 힘든 악기 오보에 연주가 거친 가파도 바람을 재운다. 이관홍 오보에 연주자는 애니메이션 주제곡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아이들의 눈망울을 사로잡았다. 물론 모든 관객들의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굵직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트럼펫 연주가 다시 섬을 채운다. 이태주 트럼펫 연주자의 ‘밤하늘의 트럼펫’이 아늑한 별빛을 떠올리게 한다. 음악은 세상을 잠시 꺼두고 우주의 그 무한한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아이들도 관객들도 황홀감에 젖어들었다.

드라마 대장금 주제곡이 바이올린 황예슬양과 황경수 성악가의 화음으로 이어진다. 아빠와 딸이 함께 하는 무대는 관객들을 감동으로 이끌었다.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음악이 있어 섬은 조금 더 환하디 환하다.

가파도는 이제 행복을 부르는 섬이다. 세상 끝 등대가 오히려 삶을 일으켜 세우듯 바람 잘 날 없는 가파도에서 살아있음이 행복이라는 걸 깨닫는다. 네가 있어 내가 있어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회 황경수
시낭송 김정희
오보에 이관홍
트럼펫 이태주
바이올린 황예슬
성악 황경수
음향 최현철
사진 허영숙
그림 고은
글 김효선

*올해 마지막 바람난장은 21일 오후 6시 아트 인 명도암(강부언 갤러리)에서 펼쳐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