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 뽑은 순우리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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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전 오현고 고영천 교장선생에게서 택배가 왔다. 묵직하다. 얼마 전 누옥을 방문해 사전을 엮으리란 뜻을 밝힌 터라 감이 왔다. 평소 굼뜨던 손인데 겉봉을 뜯느라 재게 움직인다.

실체가 드러났다. 『가려 뽑은 순우리말사전』 고영천 엮음, 가책이었다. 비매품. 647쪽. 먼저 ‘펴내는 말’에 눈이 갔다.

“작년 5월 어느 날, 큰손녀가 카톡으로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한 장은 ‘제주어말하기’ 동상을 받은 상장이고, 또 한 장은 제38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실시한 교내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백일장’에서 금상을 받은 상장이었다. 일전에 ‘개구리’를 제주어로 설명해 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이후로 제주어에 관심을 가져서인지 ‘제주어말하기대회’에 참가한 사실만으로도 대견스럽고 흐뭇하였다. 따라서 책읽기를 즐겨하고 글쓰기에도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큰손녀에게 약속을 하였다. 『우리말 유의어사전』을 만들어 주마고.”

‘두 벌 자손이 더 아깝다더니 고 교장은 손녀바보였구나.’

한 장 한 장 넘기다 고 교장에게 전화했다. “이 많은 어휘를 언제 모으고 풀이하셨지요? 대단하십니다. 회심의 역작이군요. 축하합니다.” “가책입니다. 우선 김 교장님에게 보냈지요.” “아쉽군요. 조만간 중앙과 출판 섭외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기회를 보려고요.”

찬찬히 톺아봤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외 14개 사전에서 순우리말 7689개를 뽑아내 관용어·유의어·방언·속담 등 3250개 올림말을 수록해 이해를 도왔다. 문학 작품·신문기사·잡지·방송 대본 등에 쓰인 간결하고 아름답고 세련된 문장 1만여를 예문으로 내놓아 글쓰기의 마중물이 되게 한 특히 눈길을 끌었다. 착상이 참신한데다 수많은 어휘의 용례에 이르러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정년한 지 막 십년이 넘었는데, 어간 쉴 새 없이 이 일에 매달린 게 아닌가.

내용에 집중했다. 예문이 좋은 것만 아니다. 시인 작가가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김유정, 황순원, 김동리, 박경리, 홍명희, 박완서, 현기영, 김주영… 근·현대 작가를 거의 망라했다. 엮은이의 독서의 폭과 깊이를 가늠하게 했다. 개진개진 [형용사] “가스러진 목뒤털은 주인의 머리털과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곱을 흘렸다.”〈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필자의 수필에서도 인용하고 있어 어쩔 바를 모르겠는데, 제주新보의 ‘안경 너머 세상’도 지나치지 않았다. 알음알음 [명사] “웅숭깊은 추억의 샘물을 길어 올리면서 고단했던 그 시절의 현기증을 덜어냈다. 알음알음 다윗의 반지에 새긴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대로 ‘이 또한 지나갈 것’을 종교처럼 믿었다.” (제주新보 2019.10.18.) 고 교장은 제주新보 애독자다.

동음이의어 가운데 방언을 포함한 것은 표준어와 방언이 실제 공생관계인 점을 감안해 경상·전라·제주·함경 등으로 함께 싣고 있었다. 언어사실의 실체적 존재를 엄중히 여기면서 사전의 외연을 넓혔음에 공감한다.

놀랍다. 바람 좋은 날 키질을 잘도했다. 쭉정이 하나 섞이지 않고 순 알곡으로 채웠다. 제대로 출판돼 순우리말에 목마른 이들의 타는 갈증을 축여 줬으면 좋겠다.

엮은이의 우리말사랑이 곡진함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큰일을 하셨습니다. 고영천 교장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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