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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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일본의 ‘세습 정치’는 관대함을 넘어 자랑거리 수준이다. 자녀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는 관행이 보편화됐다. 지금도 중의원 5명 중 1명, 자민당 소속으로는 3명 중 1명꼴로 세습 의원이다.

아베 신조 총리만 해도 외조부의 유명세에다 부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해 3대를 이은 대표적인 세습 정치인이다. 2000년대 초반 고이즈미 총리도 조부 때 지역 기반을 물려받아 정계에 진출했다. 당시 내각의 각료 17명 중 8명이 2세 또는 3세 정치인이었다. 정치인 자녀들이 물려받은 지역구에서 지지기반과 지명도를 바탕으로 당선되는 건 실로 식은 죽 먹기다. 그래서 일본에선 세습 정치인을 지역구·자금·가문을 동시에 물려받은 행운아라 부른다. 달리기로 치면 남보다 몇 발짝 앞서 출발한 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식이 정치를 이은 세습 의원이 더러 있었다. 조순형 의원은 고 조병옥 전 의원의 막내아들이며, 형은 6선 의원을 지낸 고 조윤형 전 의원이다. 남경필 의원은 아버지 고 남평우 전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4선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현역 국회의원이 아들에게 곧바로 지역구를 물려준 전례는 거의 없었다. 앞의 사례처럼 세습한 경우는 있어도 통상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아들이 출마하는 식이었다. 한국당 김세연 의원은 김진재 의원이 타계한 지 3년 뒤 출마했고, 민주당 김영호 의원은 아버지 김상현 전 민주당 고문과 다른 지역구에서 출마했다.

이로 볼 때 어느 나라에서나 명문가 출신 정치인은 재력·조직·유명도 등에서 남보다 앞선 출발선에 서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이 내년 총선 관련 ‘지역구 부자 세습’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아들이 현역 의원 아버지 지역구인 경기 의정부갑에서 출마할 거라는 얘기다. 보수 진영에선 문 의장의 국회 편파 운영을 지적하며 아들에게 자신의 지역구를 세습하기 위해 민주당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보낸다. 여야를 떠나 후배 정치인들의 존경을 받던 존재였기에 여느 세습 논란보다 여론의 시선이 따갑다. 아들에게 금배지를 물려주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욕심이라는 지탄인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정치 세습이 존치한다는 건 한국 정치의 아이러니다. 선대의 후광이 큰 만큼 책임도 그만큼 무거워져야 한다. 가문을 팔아 단물을 빼먹을 생각으로 나서는 2세는 단연코 없어야 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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