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재일제주인 여성의 생애
한 재일제주인 여성의 생애
  • 제주신보
  • 승인 201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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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특임교수/논설위원

2019년 한 해를 보내면서, 올해 돌아가신 여러 사람 가운데 재일제주인으로서 꼭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어떤 여성이 떠오른다. HARUKO(가네모토 하루코·본명: 정병춘)이라는 제주인 여성으로 지난 4월 3일에 103세로 돌아가셨다. 제주4·3연구소 허영선 소장이 HARUKO의 죽음을 애도하는 진실 어린 시와 글을 ‘4·3과 평화’지 (2019. July. Vol. 35)에 게재하고 있다. 그외에 HARUKO의 서거를 알리는 보도나 글은 일본에서고 제주에서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저 잊혀서는 안 될 여성으로서 이 지면을 빌려서 소개해 보려고 한다.

HARUKO는 제주 동북리에 태어났고, 12살의 어린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오사카의 봉제 공장에서 여공으로 일했는데, 한때는 지바(千葉)에서 잠수로 일하기도 했다. 17살에 같은 고향의 남편과 결혼하고 7명의 아기를 낳지만, 남편의 술·여자·도박을 일삼는 방탕삼매에 시달리게 된다.

해방 후 제주·일본을 왕복하는 밀항을 거듭하면서 한국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남편과 두 딸을 제주에 남겨두고 다시 일본에서 살기 시작했다. 4·3당시에는 토벌대 총격에 맞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파칭코(Pachinko) 경품 구매로 아이들을 키워내지만, 당시 경품 구매는 불법인데도 ‘지켜야 할 것은 법보다도 가족’이라면서 체포 경력은 37회에 달했다.

봉제나 방직공, 그리고 해녀는 식민지강점기 일본에 건너온 제주 여성의 대표적 직업들이었고 해방 후에는 파칭코 경품 구매나 밀조주 등 불법 장사, 음식점, 가방 제조 등 가내공업이 일본에서 제주 여성들이 할 수 있었던 직업이었다. 남자들은 바깥에서 방탕을 일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HARUKO는 그런 남편에게 시달린 전형적인 재일제주인 여성으로 온갖 고생을 이겨내고 가족을 지켜 3대에 걸치는 대가족을 이국땅에서 이루어냈다.

이런 HARUKO의 존재가 일본에서 알려지게 된 것은 2003년 그녀의 반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머니! 찢겨진 재일 가족(母よ! 引き裂かれた在日家族)’이 방영된 것에서 비롯된다. 거기에는 HARUKO의 장렬한 반생이 카메라맨인 아들이 1950년대 말부터 찍어 모은 귀중한 영상과 함께 그려지고 있다. 이는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듬해에는 극장용 다큐멘터리 ‘HARUKO’로 재편집돼 광주국제영화제에도 초대 상영됐다.

HARUKO의 아버지는 식민지강점기 제주도에서 부유한 상인이었지만, 본처와의 사이에 남아를 갖지 못해서 과부였던 HARUKO 어머니와 내연의 처로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태어난 것은 남자가 아니고 HARUKO였다. 2년 후에 태어난 아이도 딸로서 HARUKO의 어머니는 거의 무용지물이 되고 두 번째 딸을 낳은 뒤 앓고 6년을 누운 끝에 세상을 떠났다. HARUKO는 그 후에 본처가 돌보게 되는데 가혹한 처우를 견뎌내지 못 하고 일본행을 다짐했던 것이다.

HARUKO는 이렇듯 가부장적 인습의 끔찍한 현실을 몸소 겪으면서 자랐다. 식민지지배와 가부장제라는 이중의 질곡을 살면서 해방 후에도 가난과 차별을 이겨내고 100년을 넘는 삶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러한 HARUKO의 생애를 접하면서 오늘날 재일 동포 사회가 HARUKO와 같은 여성들의 강인한 의지 덕분에 지탱됐다는 사실을 재차 간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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